7년 전 멈춘 이산가족 상봉…"생사 확인이라도" 李 제의, 北 호응 주목

'이산가족의 날' 하루 앞두고 남북 인도적 사안 대북 제의
전문가 "1% 가능성 있다면…이산가족 문제 계속 얘기해야"

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둘째날인 25일 오후 북한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박봉렬(85) 할머니가 남측 동생 박춘자(77) 씨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 2018.8.25/뉴스1 ⓒ News1 뉴스통신취재단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이산가족의 날'(10월 4일)을 하루 앞두고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인도적 관점'의 교류를 북한에 제안했다. 지난 7년간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중단된 가운데 북한이 이산가족 생사 확인 요청이라도 호응할지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인천 강화평화전망대에서 실향민들을 만나 "남북 이산가족들이 서로 생사 확인이라도 하고, 하다못해 편지라도 주고받게 해 주는 것이 남북 모두에 있어 정치의 책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며 "북측에도 인도적 차원에서 (이런 조치를) 고려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지난달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교류(Exchange)·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END 이니셔티브'를 선보인 뒤 나온 구체적인 첫 교류 제안이다.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규정하면서 당장의 대면 교류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지만, 인도주의적 명분이 큰 만큼 북한과의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대통령의 고민이 묻어나는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남북 대화 단절 국면을 고려할 때 이산가족 대면 행사가 당장 어려운 상황에서 생사 확인이라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상봉 중단 7년 최장 기록 경신 중…고령화 우려, 이산가족 70% 이상 사망

이산가족 상봉은 '휴전협정' 제3조 제59항에 기록된 '실향민 간 귀향협조위원회'가 남북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하기로 한 이후 첫 접촉이 시작됐다. 남북 관계에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상봉 행사가 잇따라 중단되기도 했지만, 2018년 8월 이후로 7년째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중단되면서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첫 공식 상봉 행사는 1985년 9월 진행됐지만 단발성으로 끝나고, 1990년대에 교류를 재개하다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으로 상봉 정례화를 합의했다.

이후 금강산에서 해마다 약 2~3회 간헐적으로 상봉 행사를 진행하다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상봉이 중단됐다. 이후 2010년 천안함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완전히 중단됐다가, 6년 만인 2015년 재개됐다. 그러다 2018년 8월 제2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생사 확인조차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

통일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제4차 남북 이산가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5103명 가운데 75.5%가 북한에 있는 가족·친지의 생사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남북이산가족찾기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따르면 지난 8월 31일 기준 국내 생존한 이산가족은 3만 5311명이다. 1988년부터 집계된 이산가족 신청 등록은 전체 13만 4489명 중 73.4%가 사망한 것이다.

통일부는 지난 2월 북한이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금강산 관광지구에 건설했던 이산가족면회소를 철거 중인 것으로 확인했다며 이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산가족면회소 외부 전경. (통일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2.13/뉴스1
'적대적 두 국가' 규정 후 민족 개념 없애는 北…제한적 교류 순차적 제안 제언

북한의 단기적 호응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금강산 관광지구 내 이산가족 상봉 장소로 지정됐던 '이산가족면회소'마저 철거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앞서 2023년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처음으로 남북 관계를 '두 국가' 관계로 새로 정의하겠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남북 관계를 다시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헌법에 영토·영해·영공 조항을 신설해 주권 행사 영역을 규정하고, 통일과 관련한 표현을 모두 삭제"하는 내용의 개헌을 지시한 바 있다.

이는 남북을 '특수관계'로 보고 통일과 민족의 개념을 기반으로 구성한 기존의 통일 및 대남 정책을 전면 폐기해 남한을 '다른 국가'로 대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특히 지난달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김 총비서는 "199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각각 유엔에 독립적으로 가입하며 국제적으로 완전히 두 개의 국가로 고착된 것"이라며 남북이 이미 오랜 시간 두 국가로 살아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이 민족의 개념을 삭제하는 정책을 실행하면서 이산가족 상봉의 존립 근거 자체가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규창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계속 (우리와) 동족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상봉)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라며 "그럼에도 인도적 사안이기 때문에 단 1%의 가능성이 있다면 이산가족 문제는 지속해서 거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대면 방식은 모색해 볼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태원 통일연구원 인권연구실 연구위원은 "인도주의적 명분이나 국제사회 관심 등을 강조해서 북한에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는 접근법으로 생사 확인을 우선 추진하고, 서신 교환, 영상 편지, 화상 상봉 등 그나마 호응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제한적 교류를 순차적으로 시도하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