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협력기금, 늘리는 게 능사 아니다[한반도 GPS]

사업 없지만 예산은 늘고…인건비엔 사용 불가
"접촉 없는 교류·협력사업에도 사용 가능하게 해야" 의견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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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8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내 의원실에서 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관계자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 2025.8.4/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남북협력기금의 내년 예산이 3년 만에 1조 원대를 회복했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최근 3년간 평균 집행률은 3.9%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올해보다 2000억 원가량을 증액한 것이다.

남북협력기금 사업비는 2021년 1조 2431억 원, 2022년 1조 2690억 원, 2023년 1조 2101억 원 규모였으나, 2024년 8722억 원, 2025년 7981억 원으로 줄었다가 2026년 다시 1조 원대로 확대됐다.

다만 남북협력기금 집행 실적은 남북관계의 순항과 늘 관련돼 왔다. 통일부에 따르면 기금의 사업비 기준 최근 3년간 집행률은 2022년 6.1%, 2023년 1.9%, 2024년 3.8%로 나타났다.

현 정부가 남북 간 협력·교류 회복 기조를 중시하는 만큼, 내년도 남북협력기금 예산 책정은 '통일 미래 투자'라는 관점에서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늘어난 기금에 대한 적용 범위와 유연화에 대한 논의도 재점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직접 접촉 없는 평화·통일 기반 조성 활동…구체적 논의 필요

최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남북협력기금이 집행률이 저조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과) 협력이 돼야 기금을 쓸 수 있는데 협력이 사실상 (없었다)"며 "교류 협력 기반 조성에 관련 기금을 집행할 수 있거나 평화·통일 기반 조성에 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훨씬 더 여러 가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답했다.

전례 없는 남북 단절이 장기화한 만큼, 직접 접촉을 위한 지원은 사실상 어렵더라도 평화·통일 기반 조성이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남북협력기금은 남북한의 상호 교류와 경제 협력, 민족공동체 회복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설치한 기금으로, 1990년 8월 남북협력기금법에 따라 공식 조성됐다. 제정된 지 30년이 지난 만큼, 남북관계의 변화와 국민 눈높이 등을 고려해 제도를 개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행법 제9조에 따르면 '기금의 용도'는 남북 간의 교류협력 사업, 경제협력 사업, 대북 인도적 지원, 회담 및 협의 지원, 시설의 설치·운영과 그밖에 남북 간 교류·협력 증진에 필요한 대통령령의 사업 등으로 정리된다. 여기서 '대통령령을 정하는 사업'은 남북 교류협력과 관련된 연구·홍보, 국제협력, 민간단체 지원, 보증 등으로 시행령에 명시됐다.

다만 직접적 접촉 없는 활동 중 어떤 것을 '남북 교류협력'으로 볼지에 대한 문제는 더욱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외교통일위원회에 상정된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 제안 취지에 따르면 현행법은 남한과 북한 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위한 기본법률로서 기능하고 있지만, 적용 범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관련 행위에 대한 법률의 해석 및 적용에 혼선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아울러 국가가 남북 주민 간 교류협력 촉진을 위하여 어떠한 역할과 책임을 부담하는지에 관한 규정이 부재해 정책 추진의 명확성과 일관성이 미흡한 상황이라는 점도 제안 취지를 통해 지적됐다. 이에 통일부는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하며 수용 의견을 냈다.

남북 교류 경험 단체들도 공감…"중장기적 관점, 세대 간 공감대도 중요"

남북 교류협력 관련 단체들은 남북협력기금 활용 유연화에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왔다. 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관계자는 "현행법으로는 대부분 '직접 협력'에 활용되게끔 돼 있는데, 그것이 안 될 상황에는 다른 영역과 연계해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일반 정부 예산은 불용액 발생 시 반납되지만, 남북협력기금은 반납이 아니라 이월이 기본 원칙이다. 이 때문에 남북관계 경색기가 길어질 때마다, '쌓여만 있는 기금'에 대한 비판도 수시로 제기됐다.

협의회 관계자는 통일과 미래를 염두에 둔 기금 확보가 필요한 것도 맞지만, 국민적 정서와 미래세대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아이들의 통일 교육이나 사회적 합의 등에 대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인 세대들 간의 협력이 필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남북협력기금과 같은 정부 보조금이 인건비 등에 활용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남북협력기금 지원사업은 남북 교류 행사, 물자 지원, 조사 연구 등의 사업비로 사용되어야 하고, 근로자의 급여와 같은 일반 경상 운영비에는 원칙적으로 사용될 수 없다.

따라서 단체는 후원금이나 별도의 모금 등을 통해 인건비를 충당해야 한다. 이는 정부 보조금이 사적 이익으로 악용될 위험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지만, 예산이 아무리 늘어도 자금 운용의 투명성 책임 부담을 정부가 나눠서 져야 생태계 유지가 가능한 측면도 있다.

해외의 경우 정부 지원금을 일부 인건비로 사용할 수 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DRL), 민주주의진흥재단(NED) 등 인권활동 기관들도 사업 목적으로만 보조금을 사용한다는 원칙이 있지만, 일부 프로젝트 전담 직원의 급여는 프로젝트 예산에 포함할 수 있다. 전면적인 불허가 아닌 사업 연관성, 비율 제한, 투명성 보고를 조건으로 허용하고 있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