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북 접촉 '전면 승인' 나섰지만…"통일장관이 판단해야" 판례도 있어

"남북관계·국내외 정치 사정 등 고려한 통일장관의 재량 행위"…판결문 살펴보니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7월 25일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해 남북 연락채널 등 현지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7.2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 주민과의 접촉 신고를 선별해 거부할 수 있게 했던 내부 지침을 폐지하며 대북 접촉이 '신고제'로 정착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지난 정부 때 열린 접촉 수리 거부 취소 청구 재판에선 법원이 통일부 장관에게 수리 거부 판단의 재량권이 있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어, 무조건적인 '전면 승인'이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올해 2월 서울행정법원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산하 단체에 서신을 보내겠다며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현 자주통일평화연대) 소속 직원이 신청한 접촉 신청의 수리를 거부한 통일부의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뉴스1이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남측위 직원 손 모 씨는 지난 2023년 8월 21일 통일부에 총련 산하조직인 6·15 일본지역위원회 청학협의회 2명과 2023년 8월 29일~9월 28일 서신 교환을 하겠다는 내용으로 북한주민접촉 신고를 했다.

통일부는 접촉 대상자의 성명 및 소속 보완을 요구했고, 손 씨는 2023년 8월 25일 이를 반영한 보완 신고를 제출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관계 부처 협의 결과 등을 고려해 9월 6일 접촉 신고 수리를 거부했다. 이에 손 씨는 △거부처분의 이유와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고 △처분사유가 존재하지 않으며 △통일부 장관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청구했다.

남북교류협력법 제9조의2는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하려면 통일부 장관에게 미리 신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통일부 장관은 제1항 본문에 따라 접촉에 관한 신고를 받은 때에는 남북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엔 신고의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정동영 장관이 폐지했다는 내용은 교류협력법상 수리 거부 사유를 판단하기 위해 통일부 내부에서 세운 내부 지침이다. 정 장관은 통일부 내부 지침이 신고제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는 근거가 됐다고 지적했다.

"자유민주 기본질서 위해성 배제 불가…통일장관 '재량 행위' 타당"

행정법원은 판결문에서 남북교류협력법의 제9조의2가 제정된 배경을 판시했다. 접촉 신고가 승인제에서 신고제로 전환되면서 승인 거부 요건이 만들어졌고, 이를 판단하기 위해 통일부 장관의 재량권이 필요하다는 점을 짚었다.

재판부는 "남북교류협력법상 북한주민접촉과 관련한 제도는 제정 당시 '국토통일원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하는 것에서 2005년 '남북교류·협력을 저해하거나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에 반하는 경우에 한하여 신고의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고 하여 신고제로 개정됐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2009년에는 '남북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신고의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고 하여 거부 사유를 더욱 제한적으로 개정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남북 간 민간교류에 있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민간단체의 주도적 활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취지로 보아야 한다"라고 재판부는 봤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현재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현실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남북한 왕래가 북한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저해할 위험성 또한 배제할 수 없으므로, 방북을 허용할 때에는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하도록 할 필요성 또한 존재한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이러한 점 때문에 통일부 장관으로 하여금 북한 주민과의 접촉이 남북 교류와 협력을 위하여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행해지도록 조정하게 하고 있다"며 "따라서 통일부 장관의 북한주민사전접촉 신고 수리는 신청인의 접촉 목적, 범죄전력, 활동 상황, 신청자의 정치적 성향 등의 신청인 개개인에 대한 사유뿐만 아니라 접촉의 성질 및 목적, 신청 당시의 남북관계 및 국내외 정치·경제 사정의 변동, 관계기관의 검토 의견 등의 제반 정황을 고려하여 정책적으로 행해지는 것으로 통일부 장관의 재량 행위라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했다.

이 판례에 따르면 통일부가 내부 지침을 폐지해도 상위법인 남북교류협력법에 수리를 거부가 가능한 조건이 명시돼 있는 한, 여전히 접촉 신고의 수리 거부가 통일부 장관의 '재량 행위'에 달려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른 측면에선 수리 거부 여부를 검토하지 않는 것이 통일부 장관의 고유 업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라는 비판도 가능해 보인다.

다만 재판부는 '절대적 판단'을 내리지 않고 사건 처분 당시의 남북관계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북한이 "대한민국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면서 신무기를 활용한 군사적 도발을 지속하는 등 국가안보 위협을 계속하는 상황"이었다며 "북한의 군사적 도발 등으로 국가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북한주민접촉신고 수리를 거부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및 공공복리 등으로 그 범위가 넓고 광범위하며,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회복하기 매우 어렵다는 비가역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재판부는 "'현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하여 북한주민접촉신고 수리를 거부하는 것이 북한 주민 접촉을 영구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것에 불과한 이상,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침해되는 사익이 크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같은 법원의 판단을 현 상황에 대입하면, 북한의 위협적인 상황이 없거나 덜하다면, 통일부 장관의 재량 행위의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한편 정부는 대북 접촉 전면 승인이라는 기조에 맞춰 남북교류협력법 개정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신고 수리 거부 사유를 명시한 대목을 개정해 신고를 수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남북 주민들의 접촉을 막는 경우를 원천적으로 없애려는 취지로 보인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