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 상징의 건축 vs 일상의 건축
상징적 건축물 등 '드라마 속 북한'으로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오류
북한에 대한 '편향된' 시선 벗어나려면 '일상의 공간' 들여다봐야
(서울=뉴스1)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프라우드 건축사무소 공동 소장 = 북한의 건축에 대해 생각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예를 들어 미디어에 많이 노출됐던 김일성 광장의 인민대학습당이랄지, 100층이 넘는 위용을 자랑하는 류경호텔, 북한 당국이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 평양소년학생궁전 등이다.
이런 상징적 건축물들은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북한에 대한 편향된 시각과 중첩돼 종종 비아냥과 조롱의 대상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류경호텔은 외국에서 종종 가장 못난 초고층 건물로 손꼽히기도 하는데, 이러한 판단에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함께 묻어 있는 건 아닐까 궁금해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류경호텔이 상당히 훌륭한 디자인이며, 호텔 건축이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프랑스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고 구조계산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를 조롱하는 사람들 역시 류경호텔을 설계한 것이 북한 정권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 도시의 건축을 생각할 때 상징적인 건축물 위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파리를 생각할 때 루브르 박물관이나 에펠탑을 생각하고, 바르셀로나를 떠올릴 때 성가족성당을 떠올리지 보통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물론 그곳들의 아파트는 우리네의 아파트 풍경과 사뭇 다르다)를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서울을 홍보하는 영상을 보면 경복궁, 63빌딩, 코엑스, 예술의 전당 등 상징적인 건축물이 나오지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아파트나 저층주거지, 다세대 주거 골목 등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몇 년 전 미국 학교에 있을 때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에 온 적이 있다. 그들과 함께 서울의 창신동 골목골목을 누볐는데, 당시 학생들의 반응이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서울이 아니다. 여기 서울 맞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드라마의 서울도 서울이고 당시 보았던 서울도 서울일 뿐이다. 도시에는 여러 가지 모습들이 있을 뿐이다.
건축이 만들어 내는 도시의 풍경과 도시의 여러 가지 모습을 길게 언급한 이유는, 우리가 지나치게 '드라마 속 북한'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북한에 직접 가볼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북한에서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심지어 북한에 직접 가더라도 결국 관광 가이드의 손에 이끌려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볼 수밖에 없다. 어찌 됐든 우리는 북한의 편향된 한쪽 모습만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편향된 모습의 상당 부분이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이것은 북한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드라마 속 서울이 서울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듯이 북한이 보여주는 상징의 건축 이면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긍, 부정의 가치 판단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사회와 삶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서울에 드라마 속에 나오는 팬시(fancy)한 커튼월 건물들뿐만 아니라 골목길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하는 작은 다가구 주택이 즐비하다는 사실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이는 서울이 갖고 있는 하나의 이미지이자 현상일 뿐이고, 우리는 이를 통해 서울의 다양한 모습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 '일상의 건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네 아파트가 그러하듯 북한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역시 아파트 단지다. 아파트 단지라는 말을 쓰진 않고 소구역이라고 부른다. 소구역은 1~2개의 초등학교를 중심에 두고 보행가능 거리(10~20분 내)에 주거단지와 여러 서비스 시설(봉사시설)을 배치해 구성된다.
이는 러시아혁명 직후 제안된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러시아어로 Microrayon)의 개념을 그대로 차용한 것인데, 이 개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 중국, 베트남, 북한 등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에 의해 도입됐다.
이 개념이 나온 1900년대 초에 도시는 노동자들이 살기는 힘든 공간이었다. 오염에 찌들어있었고, 위생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노동자들은 노후한 주택에 수십 명씩 몰려 살아야 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삶의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다. 충분한 외부공간이 형성되고, 모든 것이 보행거리 안에서 제공되며, 교육을 위한 인프라가 공평하게 조성되어 있다.
여기까지 보면 한국의 아파트 단지와 비슷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일터'에 대한 부분이다. 사회주의 도시에서 노동자들의 삶의 환경은 매우 중요했다. 당시에는 노동자들이 일터까지 가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 곧 그들의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으로 봤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사는 곳 인근에 일터 혹은 공장이 배치되곤 했다.
북한도 이 같은 관점을 도시에 적용했다. 평양을 비롯한 대부분 도시 내에 많은 공장들이 세워진 이유는 이 때문이다. 신발공장이나 의류공장 같은 경공업 공장들처럼 노동집약적이면서도 오염배출이 적은 공장들은 유독 도시 내에 위치하고 있다. 그중에는 소구역 내에 위치한 일터도 있다. 흔히 가내작업반이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소구역에 사는 여성들이 일하는 공간이다.
이들은 대부분 가내수공업류의 일을 하게 되는데, 기관으로부터 할당받은 물량을 이곳에서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이는 이론적으로는 매우 흥미롭고 또 합리적인 방식의 '직주근접'을 현실화하는 듯 보인다. 자신이 사는 곳 바로 앞에서 일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생활 반경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생산성 있는 사회의 구성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상 아무리 좋은 것도 현실에서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법. 북한에서는 현재 이 가내작업반의 기능이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북한의 계획 경제는 붕괴됐고, 이는 소구역 내의 가내작업반에도 영향을 미쳤다. 작업반에 소속된 여성 노동자들은 가내수공업을 하고 있을 시간에 밖으로 나가서 매매 등을 통해 많은 수익을 내고, 이 중 일부를 작업반에서 할당된 작업량에 대한 대가로 지불하곤 했다.
소구역 내에 작업반이라는 공간은 있지만, 그 안을 채우는 생산업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동안 사회주의 도시의 모습이었던 소구역의 일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대신 소구역 내에는 작은 매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지 오래고, 아이들은 더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소구역 내의 학교를 마다하고 먼 거리의 학교까지 등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봉사시설이라는 이름으로 소구역 내의 일상 소비품들을 제공하던 시설들은 점차 낙후됐다. 소구역의 주민들은 멀지만 상품이 다양한 종합시장 등을 찾아가고 있다. 결국 자본의 유입이 사회주의 도시에서 실현하고자 하였던 노동자를 위한 일상의 주거 지역을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변질이라고 하기에는 북한의 주거 단지가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너무 반영하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보는 북한의 모습, 특히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축물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80년대에 지어진 인민대학습당은 그 당시 모습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활은 완전히 변화됐다. 이러한 변화는 일상적인 공간인 주거의 영역, 생활의 영역을 들여다보면 더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도시가 그러하듯, 북한 역시 이 두 개의 이미지, 즉 변하지 않는 상징적 건축과 다이내믹하게 변화하고 있는 일상의 건축이 만나는 지점에 그 사회의 본질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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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