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일본 아시안게임 참가와 민간교류[정창현의 북한읽기]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편집자주 ...북한 정치·군사·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등 북한 수뇌부에 대한 '리더십 해석'을 통해 반 발짝 앞서 북한의 변화를 읽어낸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은 서울대 대학원(국사학과)을 마치고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전문기자를 거쳐 국민대·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국가기록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지난 14일 오후 일본 오사카 나가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예선 F조 1차전 북한과 방글라데시의 경기에서 북한 선수들이 국가를 부르고 있다. 2026.9.14 ⓒ 뉴스1 안은나 기자

북한이 아시안게임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9월 19일∼10월 4일)에 북한은 축구와 역도, 레슬링 등 14개 종목에 선수 107명을 파견했다. 일본을 찾은 북한 체육 대표단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북한은 1958년 도쿄 아시안게임 때는 아시아경제연맹 회원국이 아니라 참가하지 못했고,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때는 불참했다. 일본은 핵·미사일 개발 등에 대한 독자 제재로 북한 국적자의 입국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국제 체육대회 성격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입국을 허용했다.

지난 5월 북한의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출전을 위해 방한한 데 이어 '적대적 국가'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것은 북한이 체육 교류와 안보·역사 갈등을 분리 대응하겠다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신호다.

자신들이 '적대적 국가'라고 규정한 나라에서 개최되는 국제경기에도 적극 참가하겠다는 신호는 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 제시된 '체육 발전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야 한다'는 과제와도 연결돼 있다.

이와 관련 김일국 북한 체육상이 지난 6월 5일 발간된 조선노동당 이론 기관지 <근로자>(2026년 제6호)에 기고한 "나라의 체육 발전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야 한다"라는 글에서 해외 체육교류사업을 활발히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주목된다.

김 체육상은 이 글에서 "나라의 체육 발전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자면 멀리 앞날을 내다보면서 선수후비들을 전망성 있게 잘 키우고 체육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힘을 넣으며 다른 나라들과의 체육 교류사업을 활발히 벌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양한 방식의 체육 교류를 언급했다.

"체육부문에서는 당 중앙의 구상과 의도대로 공화국의 존엄과 이익을 첫 자리에 놓고 국제체육기구들과의 사업을 책략적으로 벌리며 대외적으로 초청경기, 원정경기, 공동훈련을 많이 조직진행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과의 체육 교류사업을 활발히 벌려나가야 한다."

체육 발전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기 위해서는 모든 감독, 선수들이 세계적인 체육 발전 추세와 종목별 훈련방법, 경기전술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과학적인 지도, 과학적인 훈련을 받아들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해외 교류와 경험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표방한 것이다. 김 체육상은 국제적 수준을 목표로 국내 체육경기들을 조직하고, 종목별 국내경기들이 모두 세계 일류급 수준, 국제적 수준에 도달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오후 일본 오사카 나가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예선 F조 1차전 북한과 방글라데시의 경기, 북한 응원단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2026.9.14 ⓒ 뉴스1 안은나 기자

그는 과거 정책의 한계와 시대적 변화도 거론했다. 김 체육상은 "지난 시기 우리 선수들이 사격, 마라손(마라톤), 탁구, 유술(유도) 등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을 보유한 종목들이 오늘에도 변함없이 자기의 패권적 지위를 고수하지 못하게 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제2, 제3의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를 키워내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며 5년, 10년 또는 그 이후 시기까지 내다보는 안목과 시야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선수를 육성해야 한다는 점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체육 발전을 위한 시대적 환경의 변화와 관련 그는 "오늘의 시대는 순수한 육체와 기술, 경험과 관록, 연한이 아니라 과학기술과 인재들의 역할에 의하여 금메달 쟁탈전의 승패가 결정되는 지식경제 시대"라며 "체육선수 후비 선발과 육성, 훈련과 경기, 피로 회복과 영양 공급, 체육 교육사업과 체육 기자재 생산에 이르기까지 체육부문의 모든 사업"을 높은 수준의 과학적 토대에 기초해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과제들은 사실상 체육 분야의 다양한 해외 교류를 통해서 가능한 것들이다.

김 체육상은 노동당 9차 대회에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제시한 세부적인 과업도 처음 공개했다.

"총비서 동지께서는 체육부문 앞에 체육에서 상징 종목인 축구를 한 계단 추켜세우고 여자축구에 주되는 힘을 넣어 여러 나이급에서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할 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으며, 농구와 배구를 비롯한 다른 구기종목들과 력기(역도)와 같이 현재 인정받고 있는 체육 종목들, 국방체육 종목들과 탁구, 레스링(레슬링), 바드민톤(배드민턴), 체조, 물에뛰여들기(다이빙) 등 우리 사람들이 얼마든지 따라 앞설 수 있는 종목들을 발전시킬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이번 일본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단은 남녀 축구 대표팀을 비롯해 역도(10명), 레슬링(9명), 탁구(6명), 사격(6명), 복싱(6명), 육상(5명), 체조(5명), 유도(4명), 다이빙(3명), 배드민턴(2명) 종목으로 구성됐다. 김 총비서가 세부적인 과업으로 언급한 종목과 거의 일치한다.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표방하는 김정은 시대에 체육 분야는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체제를 선전하는 수단이다. 이와 관련 김 체육상은 "체육은 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데서 큰 몫을 맡고 있으며, 국제무대에서 이룩하는 체육 성과들은 인민들에게 기쁨과 긍지를 안겨주고 온 나라에 혁명적 열의와 투쟁 기세를 더욱 고조시키게 된다"라고 언급했다.

김 체육상의 글을 통해 볼 때 북한은 지난 2월 제9차 당 대회에서 체육 분야의 활발한 대외 교류 추진을 재확인하고, '적대적 국가'에서 이뤄지는 국제경기에도 참가하는 방향으로 '예외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방한, 일본 아시안게임 참가 등 국제체육경기에 적용된 '예외성'이 다른 민간 교류에도 돌파구를 마련해 줄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현재 민간 차원에서는 원산에서 유소년축구경기대회 개최 등 여러 방안이 모색되고 있지만 성사 가능성은 미지수다.

최근 북측 인사와 접촉한 한 해외 인사는 "조선(북) 내부에서도 상대국에서 승인한다면 꼭 필요한 영역에서는 '적대적 국가'로 규정된 한국, 일본, 미국 국적자들도 예외적으로 방북을 허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해외인사도 "국제 교류의 틀에서 민간 차원의 다자간 회의나 교류가 진행된다면 조선 측에서도 국제 정세를 고려하며 한국 인사의 참가도 검토해 볼 가능성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체육 분야의 '예외성'이 다른 민간 교류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북미 정상회담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능성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북한이 계획하고 있는 상징적인 해외교류사업이 본궤도에 올라야 될 것이다.

지난 9월 7일 북한의 라선시와 러시아의 하산을 잇는 '두만강 자동차 다리'가 개통됐고, 다음 달에는 신의주시와 중국 단둥을 잇는 신압록강대교가 개통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올해 내국인 관광과 새로 건설된 관광지구의 시설 점검에 중점을 두었고, 내년부터는 해외관광의 문을 더 열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관광을 추진하고 있는 한 해외인사는 "최근 조선 측과 해외인사들의 관광사업을 여러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외국인의 북한 관광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제 교류에서 북한 체육이 보여주는 '예외성'을 근거로 단기간의 남북 교류 재개에 과도한 기대감을 가지는 것은 피해야 하겠지만 '예외성'을 민간 교류 전반으로 확장하려는 노력은 중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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