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북한 디자이너 '꿈의 직장'… 조선산업미술창작사

"Design으로 보는 북한 사회" 제21편 산업미술창작사(디자인기업)

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 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최희선 중앙대 예술대학원 겸임교수(디자인 박사). ⓒ 뉴스1

(서울=뉴스1)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 겨울이 오면 이듬해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좁은 문을 뚫기 위해 멋진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취업준비에 애쓰는 디자인 전공 학생들의 노력이 예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작품들이 눈에 띄지 못할까 염려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척 안쓰럽기도 하다. 안정되고 좋은 연봉의 직장이 부족한 현재 디자인계 여건에 선배로서 미안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디자인산업 규모는 2019년 기준 18조2900억원 정도(2020 디자인산업통계조사·한국디자인진흥원)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지만, 2019년 조사 당시 디자인 전문 업체는 6200여개였고, 여기서 활동 중인 인력은 2만5000여명이었다. 중앙부처나 지자체 소속 디자인 전담부서 인력들도 620여명이나 됐다. 디자인산업 규모는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지만, 1인 기업과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활동도 함께 늘어나는 추세다.

북한 조선산업미술창작사 간판·상징 마크(왼쪽)와 평양시 평천구역 봉학동 소재 국가산업미술중심(디자인센터) 건물에 입주한 조선산업미술창작사 작업실 사진.. <출처 = 2020년 조선중앙TV 소개편집물 '산업미술계의 여성 창작가들-조선산업미술창작사, 2018년 8월5일자 '조선의 오늘' 중 '다양한 주제의 산업미술도안들 창작-조선산업미술창작사에서'>ⓒ 뉴스1

과거 필자는 북한의 디자이너 인력 규모가 궁금해 국가산업미술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의 오(伍)와 열(列)을 세보고 산업미술가협회의 회원 수를 추측을 해보기도 했다. 전시회 개막식 자료만으론 인력 규모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지만, 출품작 이름표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창작단체가 평양에 소재한 '조선산업미술창작사'란 점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조선산업미술창작사의 전신은 1955년 설립된 경공업과학원 소속 '경공업미술연구소'다. 1980년대 이후 경공업미술창작사로 불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초기부터 지금 명칭으로 바뀌었다. 올해 창립 66년을 맞은 조선산업미술창작사는 이름이 '경공업'에서 '산업'으로 바뀐 것처럼 공업·건축까지 디자인 전 영역에 걸쳐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다. 창작사 내엔 분야별로 공업도안단, 의상도안단, 상업도안단, 건축장식도안단 등 4개 단체가 있다. 이 창작사는 기계공업성 설계지도국 산업미술창작사나 철도성 산하 미술창작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 도안가가 많다. 여성 창작가는 주로 의상도안단과 상업도안단에 배치돼 있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직접 지도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산업미술창작사 평양가방공장의 '소나무' 마크 도안(왼쪽)과, 조선산업미술창작사의 상업미술 도안 합평회. <출처 = 2020년 조선중앙TV 소개편집물 '산업미술계의 여성 창작가들– 조선산업미술창작사”, 2018년 8월5일자 '조선의 오늘' 중 '다양한 주제의 산업미술도안들 창작-조선산업미술창작사에서'> ⓒ 뉴스1

조선산업미술창작사의 디자이너들은 붓 모양 마크가 붙은 유니폼을 입고 체계화돼 있는 도안평가회의에 자주 참여한다. 평가회의는 실합평회, 단합평회, 사합평회 등 단계적 이뤄진다. 김춘식 조선산업미술창작사장 설명에 의하면 김 위원장이 디자인 참고자료를 직접 내려주고 섬세한 부분까지 지도한다고 한다. 이 산업미술창작단체는 북한에서 내로라하는 대표 디자인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선산업미술창작사는 '주체산업미술' '우리식 도안' 등 북한식 디자인사상·윤리교육도 철저히 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올해 5월2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강화해 혁명적 준법 기풍을 확립했으며 당 정책관철과 혁명과업수행에서 모범적인 단위들"(5월31일자 노동신문)에 주는 '모범준법단위칭호'를 받았다. 신문에 실린 칭호 수여기관들의 호명 순서만 봐도 김일성종합대 원격교육학부 다음으로 6번째로 나왔으니 북한 사회에서 높이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2021년 10월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제76돌 경축 국가산업미술전시회에 출품된 조선산업미술창작사 도안들 <출처 = DefendKorea, 조선중앙TV 소개영상물> ⓒ 뉴스1

북한의 산업미술가들은 이름 있는 고등교육기관에 입학해야 디자인 분야에서 미래가 보장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최근 전시회를 보면 산업미술 강좌들이 개설된 각 지방 예술대, 경공업대, 상업대, 건축대에서도 도안을 내놓지만, 공식 엘리트 코스는 평양미술대와 평양출판인쇄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산업미술가들은 대부분 내각 소속 창작사, 도 인민위원회 산하 산업미술국에서 일종의 공무직을 수행한다.

극소수 학생들에게 배움의 자리가 돌아가다가 보니 부모·자식이 세대를 이어 미술가가 되면 화제가 된다. 노동신문은 작년 8월30일자 '제도가 좋아 꽃피는 보람찬 생활'이란 기사에서 미림승마구락부와 중앙동물원의 마크 도안을 담당한 산업미술가 아들이 조선산업미술창작사에서 창작가로 함께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작년 12월3일자 '조선의 오늘'도 화가인 아버지와 평양시산업미술창작사에서 활동하는 마크 도안가 딸의 소식을 전한 적이 있다. 북한미술계에서 예술 가족의 능력을 인정받아 부자, 부녀, 모녀 '예술가'로 활동하는 경우도 잦으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남북한 디자인을 기업 수, 전문가 인력 규모로 비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남북한은 체제와 인력 양성과정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남북한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공정'에 예민한 젊은 디자이너들이 사회에서 정당한 기회를 얻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 잡혔으면 좋겠다.

sseo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