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기자의 개봉영화]남영동1985 - 아픈 과거, 감독의 미필적 고의

정치적인 의도를 띤 영화는 아무래도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1985>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영화 내용보다는 '개봉시점' 때문이다.
다음 주에 개봉하는 강풀 원작의 <26년>까지 묘하게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대선과 맞물리면서 찬반양론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 자체 만으로만 본다면 남영동1985는 대단히 잘 만들어진 영화다. 또 영화로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는 소재다.
그만큼 고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삶은 드라마틱하면서도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을 잘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소수의 고통'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다수를 위해 소수는 희생해도 되는가라는 철학적인 물음으로까지 파고든다.
실제로 정지영 감독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독재정권의 고문통치에 의해 고통 받는 한 명과 그것을 지켜보는 다수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잘 그리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김종태(박원상)가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경영)에 의해 고문을 당할 때 그것을 지켜보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다.
그들도 분명 가해자지만 극악무도한 고문기술자 이두한의 등장으로 그저 평범한 다수로 바뀐다.
그들도 고통을 아는 인간들이지만 그들이 김종태의 고통을 오히려 즐길 수 있었던 건 바로 '승진' 때문이다.
김종태가 고문에 못 이겨 진술을 조작하면 성과가 인정되고 결국 자신들은 승진을 하게 된다는 구조다.
죽음보다 더한 한 개인의 고통에 가장 가깝게 근접해있지만 그들은 그렇게 철저히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기만 하다.
때문에 그들을 바라보는 김종태의 눈빛은 시종일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고통 받는 그 순간에도 그들은 평소 좋아하는 프로야구 중계 청취에 더 열을 올리거나 자식이나 애인의 변심을 걱정한다.
심지어 그 앞에서 발톱을 깎거나 책을 펴놓고 진급 시험 공부를 하기도 한다.
결국 김종태의 시선은 대공분실 안을 날아다니는 파리 한 마리에 감정이입이 이뤄지게 된다.
그 때 그 독재정권 하에서는 한 명의 소중한 생명도 가끔 파리 목숨이 될 수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성기노출도 마다하지 않은 박원상씨의 열연이 놀랍다 못해 충격적이다. 또 고문 받는 장면은 너무도 리얼해서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만큼 강력하다.
전후과정을 생략하고 곧 바로 남영동 장면부터 나오는 빠른 전개도 리얼리티를 살리는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
그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공사'라고 불리는 고문이 모두 끝나고 난 후 고문기술자 이두한이 김종태에게 말한다. "세상이 바뀌면 날 잡아다 고문하세요"
결코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이두한의 조롱 섞인 말이지만 세상은 바뀌게 되고 김종태는 장관에까지 오른다.
결국 세월이 흘러 김종태와 마주 선 이두한은 그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
1985년 9월 남영동 대공분실에 김종태와 함께 있었던 다른 이들도 세상의 반작용으로 응당의 고통을 겪게 된다.
결국 정지영 감독은 말한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되면 안 되는 이유는 언젠가 그 소수가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인간이기에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 않겠나.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 우리 모두를 구원할 것이다.
비록 개봉시점과 관련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감독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 하더라도 정지영 감독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lucas02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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