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영화읽기]무간도-끝과 삶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끝’은 야누스의 두 얼굴을 지녔다. 행복의 끝은 악마지만 고통의 끝은 천사다.

그래도 행복의 끝은 어느 쪽이건 괜찮다. 끝없는 행복은 인간의 궁극적인 바람일 테고, 행복이 끝나더라도 잊었던 일상을 다시 찾는다면 힘들 건 크게 없다.

하지만 고통이 끝이 없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

군대에 끌려 간 병사들이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것도 끝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든 제대라는 끝을 향한 국방부의 시계는 계속 돌아가니까.

하지만 끝이 없는 고통은 절망을 넘어 차라리 지옥이다. 불교에서도 고통이 가장 심한 지옥을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일컷는다.

무간(無間), 즉 잠시도 쉼이 없는 고통이 가해지는 지옥을 말한다.

그 곳에서는 죽지도 못한다. 현세에서는 죽으면 고통이 끝나지만 무간지옥에 갇히면 죽지도 못한 채 끝없는 고통이 이어진다.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무간도>에서 진영인(양조위)은 경찰이지만 범죄조직의 스파이로 키워진다. 반면 유건명(유덕화)은 범죄조직의 조직원이지만 경찰에 잠입한 스파이로 길러진다.

악으로 위장한 선과 선으로 위장한 악은 그렇게 포지션이 서로 닮은 듯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완전히 다르다.

선과 악은 서로 추구하는 게 다르기 때문. 다시 말해 선이 악으로 위장했을 때 받는 고통과 악이 선으로 위장했을 때 받는 고통의 크기는 다르다.

실제로 <무간도>는 경찰에 잠입한 유건명보다 조직에 잠입한 진영인이 받는 고통에 초점이 맞춰 진다.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그가 평소 잠을 잘 못 이룬다는 것.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있는 정신과의사의 치료를 받을 때만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악을 행해야 하는 그의 고통은 끝이 없었고, 조직의 스파이로 살아가는 그의 삶은 한 마디로 무간지옥이었다.

하지만 잠시나마 홍콩느와르의 부활을 알린 <무간도>의 진정한 깊이는 결말에서 두드러진다.

선의 세계에서 죽음은 큰일이지만 악의 세계에서 죽음은 흔한 일. 결국 고통 속에서 진영인은 죽고, 유건명은 살아남는다.

이 말인 즉은 진영인은 죽음을 통해 끝이 났지만 유건명은 살아남아 계속 고통이 이어지게 된다.

진정한 무간지옥에 빠진 이는 진영인이 아니라 바로 유건명이었던 것. 선이 아니라 악이 무간지옥에 빠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무간도>와 그 영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어 버린다.

끝이 없는 걸 다른 말로는 ‘영원’이라 부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영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행복도, 영원한 고통도 없다.

그래도 영원한 고통이 없는 건 다행스럽지만 영원한 행복이 없는 건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행복이 끝이 있다는 게 바로 불행이 아닐까.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 상실감은 내내 삶을 괴롭힌다.

행복을 위해 사는 인간에게 행복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것만큼 불행한 일이 또 있겠나.

결국 행복도 끝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고통이 되기 마련이다. 프랑스 시인 랭보가 말했던 것처럼 여긴 이미 지옥인지도 모른다.

허나 그래도 우리들 삶에는 ‘쉼’이란 게 있다.

비록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지옥 같은 삶 속에서 우리를 잠시 쉬게 하는 사랑, 그것조차 없다면 삶은 얼마나 지옥 같을까.

최소한 이곳이 무간지옥은 아닐 것이다.

<무간도>에서 진영인도 정신과의사 이심아(진혜림)의 사랑 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아인슈타인도 이런 말을 했다.

“만유인력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책임지지 않는다.”

3월17일 재개봉. 러닝타임 100분.

lucas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