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영화읽기]헬머니–욕의 맛
- 이상길 기자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물론 '욕'이란 게 좋지는 않다. 하지만 필요하다. 폭력행사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일이란 게 어디 좋은 일만 있나. 살다 보면 속된 말로 뚜껑 열리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도 세상은 인내를 요구하지만 그러다보면 복장 터진다. 복장만 터지나. 나중에는 자칫 화병까지 생길 수 있다. 분노도 에너지다. 방출이 필요하다.
다만 분노를 방출하는 방법에서 욕은 폭력행사보다 백배 낫다. 어차피 풀어야할 분노라면 욕은 그래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덜 주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야 어쩔 수 없겠지만 신체적인 가해가 이뤄지는 폭력은 결코 정당화되기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욕은 '중용(中庸)'이다. 속으로 삼켜서 화병생기는 것과 극단적인 폭력행사의 중간 지점에 있다.
국가 간의 전쟁이 무력 대신 욕으로 치러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일용엄니' 김수미씨를 비롯해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욕설로 가득 찬 <헬머니>는 그래서 결코 가벼운 영화가 아니다.
<헬머니>에서 욕은 겉보기에는 웃음코드로 보이지만 그 끝이 향하는 곳은 사실 삶에 대한 메시지다.
삶과 욕이라. 그닥 어울리지는 않지만 세상살이의 힘든 여정 속에서 욕은 필요성을 넘어 성장하기 마련이다. 맞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욕도 는다.
그 잔인함에 욕하는 사람을 야만인으로 여기던 순수했던 시절은 욕보다 더 잔인한 현실 앞에서 점점 할 말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쩌면 자란다는 건 욕과 친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를 일이다. 욕이 잔인한 현실을 상징한다면 성장은 곧 현실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의미할 테다.
그래서 가끔 찰진 욕은 아주 정감 있게 들리기도 한다. <헬머니>에서 헬머니(김수미)의 욕이 그렇다. 삶의 굴곡 속에서 멍울 진 가슴이 내뱉는 욕이다.
비슷한 삶의 고통 속에서 동병상련적인 쾌감으로 넘쳐난다. 그렇게 헬머니의 욕은 사람을 살리는 욕이다.
더불어 '헬(Hell)머니'란 지옥 같은 삶을 견뎌온 할머니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가끔 지옥이 되곤 한다.
그렇게 수차례의 지옥을 거치고 나야 비로소 노인이 된다. '욕쟁이 소년'이나 '욕쟁이 아저씨'와 달리 '욕쟁이 할머니'에게는 오히려 정감이 가는 이유가 아닐까.
욕이란 건 대상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상대를 잘 봐가며 해야 한다. 진짜 나쁜 놈한테 욕은 필수지만 이유 없이 무조건적이거나 자기 이익을 기준으로 가해지는 욕은 질이 아주 나쁜 욕이다.
욕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쾌감이 있어야 하지만 후자는 불쾌감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욕은 책임과 비례관계에 있기도 하다. 책임이 클수록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힘을 가진 자에게는 그를 감시하는 사람도 많기 마련이어서 아예 욕을 많이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권력에 대한 욕은 나쁜 게 아니다.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힘을 가졌다고 자신에 대해 욕을 못하게 하는 게 더 나쁜 짓이다.
극중에서 헬머니도 외친다. "가진 게 없으면 욕이라도 해야지!"
그렇게 욕은 가끔 약자들의 저항의식을 대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욕이 가끔 필요한 진정한 이유는 바로 '용서'가 아닐까. 도저히 어쩔 수 없을 때는 욕이라도 해야 속이 풀리기 마련이고 그러고 나면 미안한 마음에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인간이 성인군자가 될 수는 없다. 욕도 에너지를 주고받는 방식의 하나라고 본다면 욕쟁이 할머니에게 환호하듯 어렵기만 한 삶을 좀 더 유쾌하게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욕 없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다. 욕을 해야 용서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 먼저 용서를 해서 욕이 필요 없는 세상이 더욱 좋지 않겠는가.
어려운 일인 줄 알지만 <헬머니>에서 헬머니도 마지막에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다들 욕들 하지 말고 살아!"
서로를 이해하면서 욕 없는 좀 더 좋은 세상을 같이 만들어 보라는 뜻이 아닐까.
5일 개봉. 러닝타임 108분.
lucas0213@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