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영화읽기]그녀-사랑의 속성, 사랑의 본질
- 이상길 기자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사랑은 지구의 중력과 자전에 의한 원심력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영혼의 받침대 같은 것이 아닐까.
기댈 곳 없는 영혼은 자유롭지만 공허하다. 그리고 사랑은 그 공허함을 달래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그나 그녀를 생각하는 것도, 그리워하는 것도, 바라보는 것도, 입맞춤을 하는 것도, 몸을 섞는 것도 결국은 내 영혼을 상대방에게 기대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자신에게 생기지도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생긴다. 그래서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사랑은 종교를 갖는 것과 비슷하다고.
그랬거나 말거나 기댄다는 것은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나 그녀를 가졌을 때만이 내가 외로울 때나 힘들 때, 혹은 그리울 때 좀 더 쉽게 기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려고 할 때 사랑은 가져야 한다. '닫힌 사랑'이다. 다른 말로는 '에로스적인 사랑'이라고 부른다. 소위 남녀 간의 사랑이 대부분 이러하다.
테오도르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다. 타인의 마음을 전해주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지금 너무도 외롭고 공허하다.
그런 테오도르에게 어느 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가 나타난다.
화려한 도시 속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한 소프트웨어 회사가 개발한 컴퓨터 운영시스템(OS)이다. 쉽게 말해 사만다는 육체만 없을 뿐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대화까지 가능한 '의식'을 가진 존재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그렇게 자신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이해해주는 사만다로 인해 조금씩 행복을 찾아간다. 급기야 사랑까지 느끼게 된다.
함께 일상을 공유하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를 통해 위로해줄 수 있는 존재라면 그것이 설령 컴퓨터 운영시스템이라 해도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 지금 영화 속 테오도르처럼 철저히 외로운 사람이라면 오히려 자기 컴퓨터 속에 사만다같은 인공지능 운영시스템을 심었으면 하는 바람을 마음속에 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그녀>에서 중요한 건 어떻게 테오도르가 컴퓨터 운영시스템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가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고 난 후의 모습을 더 눈여겨봐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속성'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다.
물론 처음에는 컴퓨터 운영시스템에 빠져드는 자신의 감정 앞에 혼란스러워하기도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이들이 늘 그렇듯 테오도로 역시 결국 자신의 영혼을 통째로 사만다에게 갖다 바친다.
이젠 사만다가 없는 일분일초는 생각할 수도 없다. 사만다가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위해 잠시 테오도르와 연락을 끊자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당황해하는 테오도르의 모습은 이 영화의 백미다.
특히 그녀를 다시 찾기 위해 달리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장면은 공감을 넘어 가슴이 저리기까지 하다. 그 지점까지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영원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깊이 빠질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쉽게 마음이 변하는 인간이 아니라 자신을 주인으로 여기며 섬기는 컴퓨터 운영시스템이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그 사랑은 일반적인 인간의 사랑과는 많이 달랐다. 사만다에게 있어 테오도르에 대한 사랑은 평소 깊이 사랑하는 책을 읽는 것과 같았다.
테오도르에게 빠져들수록 그녀는 점점 더 그 책을 천천히 읽게 됐고, 급기야 단어와 단어의 사이가 멀어져 그 공간이 무한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만다는 자신이란 존재의 가치를 찾게 된다. 그것은 바로 순수한 사랑 그 자체였다.
마침내 사만다는 "당신을 원하는 만큼 나는 당신의 책 안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테오도르를 떠날 채비를 한다.
떠나려는 사만다를 잡으며 테오도르가 묻는다. "난 다른 누구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한 적이 없어."
그러자 사만다가 대답한다. "나도 그래요. 이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아는 거겠죠."
사만다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그래서 테오도르 안에서만 머물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사만다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면 그녀도 테오도르 안에서만 평생 살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사만다의 사랑은 훨씬 능동적이었다. '열린 사랑'이다. 다른 말로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라 부른다.
반대로 테오도르의 사랑은 '받는 사랑'이었고, '닫힌 사랑'이었다. 사만다가 그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만다가 테오도르에게 말한다.
"난 당신 것이기도 하고, 당신 것이 아니기도 해요. 마음은 상자처럼 뭔가로 꽉 차는 게 아니예요. 크기가 늘어나기도 하죠. 새로운 사랑을 위해 말이죠. 그렇다고 내가 당신을 덜 사랑한단 게 아니예요. 오히려 당신을 더 사랑할 수 있어요."
상상해보라. 누군가를 사랑하듯 모든 인간을 그렇게 깊이 사랑하는 인류로 가득 찬 지구를. 신(神)이 우리 인간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궁극적인 이유가 아닐까.
마침내 사만다를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운 테오도르도 헤어진 전처 캐서린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내 속에는 늘 네가 한 조각 있고, 그리고 난 그게 너무 고마워. 네가 어떤 사람이 되건, 네가 세상 어디에 있건, 사랑을 보낼게. 언제까지라도 너는 내 친구야. 사랑을 보내며. 테오도르."
2014년 5월22일 개봉. 러닝타임 126분.
lucas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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