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영화읽기]변호인-변호사, 변호인, 노무현
- 이상길 기자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인간세상에서 민주주의나 법치주의가 어려운 것은 '응축성'이라는 권력이 지닌 속성 때문이다. 권력은 흩어지는 것을 싫어한다.
오죽했으면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도 중간계를 좌지우지하는 절대권력을 조그마한 반지 하나에 담아냈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권력의 달콤함을 맛보면 더 크고 독점적인 권력을 원하기 마련이다. 그들로 인해 권력은 분산보다는 한 곳에 집중되려는 성질을 쉽게 띤다.
하지만 영국 역사가 W 액튼 경(卿)이 말했듯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마련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삼권분립이나 언론의 자유, 혹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등을 법이나 제도적으로 정립하려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현실은 많이 다르다. <반지의 제왕>에서 악의 화신 사우론이 만든 절대반지에 대다수의 다른 반지들이 알아서 고개를 숙이듯 절대권력의 거대한 힘 앞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 위해, 혹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마찬가지로 쉽게 고개를 숙인다.
법에 엄연히 규정돼 있어도 자유나 평등, 혹은 정의가 이 땅에 잘 서지 못하는 이유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법에 삼권분립이 규정돼 있었지만 정점에 선 절대권력에 그들 모두 고개를 숙였고, 언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변호인>의 시대적 배경이 된 5공 정권 당시에는 대통령 일가의 사생활에 방송카메라가 동원되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용공조작 사건을 통해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소위 '빨갱이'로 몰아 마구 고문을 가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게 했던 '부림사건'을 들 수 있다.
<변호인>은 1981년 5공 군사독재정권이 집권 초기 통치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일으킨 부산 지역 최대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그 중심엔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이 있다.
고졸 출신으로 가난을 딛고 사법고시에 패스한 우석은 부산에서 조세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며 승승장구한다.
대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 데뷔를 코 앞에 둔 송변.
하지만 평소 자주 다녔던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시국사건에 휘말리면서 그들의 변호인으로 나서게 되고 충격적인 현실 앞에 분노하기 시작한다.
<변호인>의 영화적 재미는 송변이 우연히 접하게 된 용공조작사건을 통해 변해가는 과정에 있다.
겨우 가난에서 벗어나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졌던 그였지만 공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고통을 겪는 이들을 보고는 탄탄대로를 버리고 홀로 가시밭길로 나선다.
하지만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무모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행동이 다른 이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수많은 다른 변호사들의 각성을 이끌어내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백미로 큰 감동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변호인>은 영화적 재미만이 전부가 아니다. 영화 속 장면 장면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 찬만큼 다분히 정치색을 띠고 있다. 감독이나 배우가 "아니다"고 우겨도 어쩔 수 없다.
특히 송변 오른쪽 가슴에 달린 수감번호 33번은 물론 마지막 최루탄 시위 장면은 87민주화항쟁 당시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해 이미 인터넷상에 많이 떠돌고 있는 사진 속 장면을 그대로 담아내 이미 고인이 된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눈물샘을 마구 자극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누구든 정치인으로서 노무현을 좋아할 자유는 있다. 그 지점에서 이제 관객들은 영화의 제목으로 고개를 돌린다.
왜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인'일까. 그것은 송변이 영화 속 용공조작 사건과 관련해 부당한 독재 권력의 횡포에 유일하게 저항한 인물이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영화 속에서 올바르게 법을 집행해야 할 판사도, 검사도, 경찰도, 그리고 그들을 감시해야 할 언론도 모두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절대권력의 앞잡이가 돼서 무고한 사람들의 고문에 가담했다.
그들에게 이 땅의 정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자식들에게 물려 줄 세상의 모습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송변은 그러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문 하나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웠다.
송변이 법정에서 고문을 주도한 경찰 차동영(곽도원)에게 소리친다.
"당신이 애국자라고 생각하나? 당신은 그냥 부당하게 권력을 잡은 군사독재정권의 앞잡이일 뿐이야!"
정확히 15년 뒤 5공 군사독재정권은 법정에 서게 되고, 영화 속에서도 사진으로 자주 등장하는 정권의 수괴는 내란죄로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결국 송변이 옳았던 것. 그렇게 모두가 두려워서 피할 때 그는 홀로 맞섰다. 단순하게 직업을 지칭하는 '변호사'라는 제목으로는 왠지 부족한 이유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필독서지만 영화상에서 당시 군사독재권력에 의해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혔던 <역사란 무엇인가>란 저서에서 E.H.Carr는 말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시대의 결핍은 재미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영화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가끔 거짓으로 진실을 말하곤 한다.
<변호인>은 개봉 일주일 만에 300만을 훌쩍 넘겼다. 앞으로 1000만은 충분히 넘길 거라는 전망이다.
그런 만큼 비록 <변호인>이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도 과거와의 대화를 위해 입을 좀 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양우석 감독과 영화 속 송변이 현재에 던지는 질문은 이거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안녕하십니까?"
18일 개봉. 러닝타임 127분.
lucas02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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