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영화읽기]고령화가족-찌질해도 삶은 아름답다
<고령화가족>에서 철딱서니 없는 세 남매의 엄마(윤여정)는 늘 담벼락 돌덩이 틈 사이에 홀로 핀 한 송이 들꽃에 자신을 빗댄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둘째 아들에게 말한다. "참 예쁘지? 꼭 엄마 같지?"
하지만 그녀는 자식농사에 완전히 실패한 사람이다.
첫째 한모(윤제문)는 삼류건달로 예전부터 '총체적인 난국'이었고, 둘째 인모(박해일)는 기껏 공부시켜 영화감독이 됐지만 데뷔작이 쫄딱 망하면서 인생낙오자로 전락했다. 막내 미연(공효진)은 이혼이 벌써 두 번째다.
그런데 요것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어느 날 엄마 집에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이미 마흔을 훌쩍 넘긴 첫째는 여태 결혼도 못한 채 오래전부터 엄마한테 빌붙어 찌질하게 살고 있었고, 인생낙오자가 되어버린 둘째는 자살하려던 순간 막 걸려온 엄마의 전화 한통에 마음을 고쳐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막내는 두 번째 남편과 한바탕 싸운 뒤 이혼하겠다며 집으로 기어들어왔다.
소설 <모비딕>을 쓴 '멜빌'이 "인생은 집을 향한 여행"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는가.
하지만 정작 너무한 사람은 세 남매의 엄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나잇값을 전혀 못하는 아들·딸들이지만 엄마는 집에 모두 모인 자식들을 위해 그날부터 시도 때도 없이 고기를 사 먹인다.
싸구려 연립주택에서 어렵게 살지만 엄마는 자식들의 찌질하고 못난 모습에 화 한번 내지 않고 그저 지켜만 볼 뿐이다.
비록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다고 해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고령화가족>의 엄마는 평범한 한 사람의 엄마라기보다는 마치 예수나 부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너무 관대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고령화가족>은 주인공들의 대사처럼 지나치게 극단적인 영화다.
개차반의 자식들과 성인군자 같은 엄마라니. 그래서 약간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가진 메타포는 의미심장하다.
<고령화가족>에서 가족은 곧 우리 사회 전체를 대변하고, 날로 고령화 사회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사회구조적 이야기로 구분된다. 영화상에서 전자는 핏줄로 표현되고, 후자는 패자부활이 갈수록 어려워져만 가는 냉혹한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점철된다.
사실 첫째 한모와 막내 미연은 버림받은 자식들이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한모는 가족들 어느 누구하고도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른바 '주어온 자식'이다.
심지어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엄마나 돌아가신 아버지하고도 DNA구조가 다르다. 미연도 반쪽짜리긴 마찬가지. 미연은 나중에 자신의 출생과 관련해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가. 한모와 미연은 소위 적자인 둘째 인모의 공부를 위해 자신들의 꿈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물론 둘째가 공부에 재능을 보였던 탓도 있지만 술자리에서 터져 나온 미연의 넋두리처럼 인모는 분명 형 한모와 동생 미연의 꿈을 짓밟고 대학까지 갈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다.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연 출생의 상태가 아닐까.
어느 나라에서, 어느 집에서,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나는가에 따라 삶은 크게 좌지우지된다.
하지만 신(神)의 명령인 만큼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전혀 없다. 때문에 어떤 아이는 가끔 성범죄로 생겨나기도 한다.
그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던가. 그래도 열심히 살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훗.
<고령화가족>에서 둘째 인모의 삶을 보자. 세 남매 가운데 가장 축복받고 태어난 아이지만 인모의 삶은 어찌 보면 가장 비참하다.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으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첫 영화가 쫄딱 망하면서 퀴퀴한 옥탑방 월세도 못 내고 결국 자살을 결심하는 처지가 된다.
인모의 죄라면 꿈을 꾼 죄밖에 없다. 하지만 냉혹한 사회는 단 한 번의 실패에 대해서도 패자부활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삼류건달 한모의 삶만 그런 게 아니다. 별 볼 일없는 99%의 사람들에게 요즘 같은 세상은 태어나는 것 자체가 '총체적인 난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고령화가족>은 결코 신을 탓하거나 세상을 탓하려고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세상에 순응하면서 가족 간의 정을 통해 극복하려는 점에서 찌질하고 눈물겹지만 아름답다.
또 스스로의 자존감은 결코 잃지 않으려는 둘째 인모의 모습을 통해 대단히 현실적인 힐링법도 제시한다.
모든 찌질함의 향연이 끝나고 비로소 가족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 인모가 말한다.
"모든 생명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좋거나 나쁜 삶이란 없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찌질하면 찌질한 대로 자기에게 허용된 삶을 살면 그 뿐이다. 아무도 기억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개인에게 주어진 삶이고, 역사다."
누가 그랬듯 만원짜리 지폐는 구겨지거나 물에 젖어도 만원의 가치는 그대로다.
<고령화가족>에서 엄마가 모처럼 다 모인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고기를 사 먹인 것은 결국 "힘을 내라"는 무언의 격려였다.
이미 충분히 살아 본 엄마로서 인생은 담벼락에 아슬아슬하게 핀 한 송이 들꽃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삶은 또 아름다운 게 아닐까. 9일 개봉. 상영시간 112분.
lucas02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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