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불을 끄다…서울시 '사랑의 불끄기' 카페 1호점 가보니

"불을 꺼도 될까요?"
23일 오후 7시 이성열(24)씨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친구를 기다리며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던 이씨에게 카페 점원이 말을 건넨 것.
보라색 향초를 들고 다가온 점원은 테이블 위에 초를 켜 올려놓으며 말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한 시간 동안 불을 끕니다. 대신 초를 켤게요."
이곳은 서울시 에너지절약 정책인 '사랑의 불끄기'에 동참한 첫 카페인 노원구 상계동 '탐앤탐스'이다. 점원들이 50여명의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테이블을 돌며 초를 켰다. 화장실 등 꼭 필요한 곳만 제외하고 촛불이 밝힌 빛으로만 가득 찼다.
20분 후 도착한 이씨의 친구는 머플러를 벗어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왜 불을 다 껐느냐"고 물었다. 이씨는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한 시간만 불을 끈다"며 "서울시와 함께 하는 정책이라 들었다"고 설명했다.
동갑내기 친구와 카페를 찾은 성모(25·여)씨는 "방금 전까지 시끄러웠는데 불을 끄고 초를 켜니 조용해졌다"며 "소곤소곤 이야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함께 온 원모(25·여)씨도 성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고 온건 아니지만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이렇게 촛불을 켠 건 처음 봐 새롭다"고 신기해했다.
3년간 이 카페에서 일한 김시몬(26)씨는 "이 시간대에는 커플고객이 많기 때문에 분위기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정전이냐고 묻는 손님들이 간혹 있지만 항의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그는 "불을 끄기 전에 초를 가져다 놓으며 미리 공지하기 때문에 손님들도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불편해하는 손님들이 있을까봐 소등시간에는 1+1 쿠폰을 증정하고 있어 이 시간에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던 이모(24)씨는 "미리 알려 주면 좋을 것 같다"며 "답답한 감이 없지 않지만 에너지 절약이라는 취지가 좋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 "불 끄니 잘생겨 보여… 여기서 소개팅 할까?"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친한 친구들을 만났다는 박모(22)씨는 촛불을 앞에 두고 친구들 얼굴을 보니 "여드름도 잘 안보이고 더 잘생겨 보인다"며 "앞으로는 소개팅할 때 촛불 켠 카페만 찾아가야겠다"고 웃었다.
" 낭만적인 기분이 들어 커플끼리 오면 좋을 것 같다", "여자친구와 다투던 중이어서 기분이 별로였는데 촛불을 켜니 분위기가 좋아졌다 "는 등 반응이 좋았다.
어색한 순간도 있었다.
서로의 얼굴이 예쁘고 훈훈해보이던 1시간이 지나고 불을 다시 켜는 시간이 됐다.
오후 8시, 점원들은 다시 손님이 있는 테이블로 가 초를 끄며 "이제 불을 켜겠다"고 말했다. 불이 모두 켜지자 일부 손님들은 순간 어색함을 느낀 듯 주위를 둘러봤다.
카페는 이내 불을 끄기 전 분위기로 돌아왔다. 커플들은 여전히 손을 잡은채 눈을 맞추고 있고, 친구와 앉아 커피를 마시던 손님들은 나누던 대화로 돌아갔다.
사랑의 불끄기 카페 1호점 탐앤탐스(노원점)와 2호점인 망고식스(노원점)를 운영하는 사장 강철수(57)씨는 노원구청의 소개로 '사랑의 불끄기'를 알게 됐다. 강씨의 카페가 노원구청이 지정한 '착한 가게'라는 것을 안 서울시가 참여를 제의했고, 평소 에너지 절약에 관심이 많던 강씨가 흔쾌히 동참했다.
강씨는 "한 노부부는 매주 수요일 이 시간 마다 찾아온다"며 단골손님이 생겼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또 "두 시간으로 늘려달라는 손님도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시가 지원해주는 건 없다. 초도 강씨가 자비를 들여 구입한다. 강씨는 "매출은 변화가 없지만 전기세가 줄었다"고 말했다. 다만 "사랑의 불끄기에 참여하게 될 다른 가게들도 이를 상업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에너지 절약이라는 애초 취지에 공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해 12월 10일 시작한 '사랑의 불끄기'카페 1·2호점은 앞으로도 서울시와 협의해 계속 실천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사랑의 불끄기 카페에 동참한 곳은 노원구 카페 2곳이지만, 다른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과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에 서울시내 '사랑의 불끄기 카페' 중 1곳을 찾아 시민 100여 명과 촛불데이트를 할 예정이다.
▲서울시 '사랑의 불끄기' 운동
서울시는 2012년 12월 12일부터 '사랑의 불끄기'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시는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이후 신청사와 서소문별관 사무실 전등을 일제히 소등하는 '사랑의 불끄기의 날'을 야근 없이 일찍 퇴근하는 '가정의 날'과 연계해 실효성을 높이고 산하기관과 자치구, 기업 및 대학교, 가정 등이 동참하는 캠페인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 캠페인의 일환인 '사랑의 불끄기 카페'는 시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인 카페의 일부 조명을 소등하고 촛불을 켜는 가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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