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강제송금·승선 전 구금도 '인신매매 징후'…피해자 식별지표 개정

국적 따른 근로조건 차별도 판단 기준

성평등가족부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어업 이주노동자의 급여를 제3자 계좌로 강제로 보내게 하거나 승선 전 이동이 제한된 장소에 가두는 행위도 앞으로 강제노동과 인신매매 피해를 가려내는 구체적인 판단 기준으로 활용된다.

성평등가족부는 해양수산부와 함께 '인신매매등피해자 식별 및 보호에 대한 지표'를 개정해 오는 3일부터 시행한다고 2일 밝혔다.

피해자 식별지표는 인신매매방지법에 따라 수사나 현장 점검 과정에서 인신매매 피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활용하는 기준이다.

이번 개정은 선박이나 외딴 작업장 등 외부와 단절되기 쉬운 환경에서 일하는 어업 이주노동자의 특성을 반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미 국무부 인신매매 보고서가 권고한 어업 분야 특화 지표 개발을 이행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우선 경제적 통제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구체화했다. 급여가 근로자 본인 계좌에 입금된 뒤 중개업자나 고용주 또는 이들이 지정한 제3자의 계좌로 본인 의사에 반해 자동이체·송금되거나 현금 지급을 강요받은 경우가 새로 포함됐다.

고금리 대부계약이나 연대보증 등 채무를 이용해 노동자를 사업장에 묶어두는 행위도 판단 대상에 들어간다. 선원이 거주지나 근로계약 체결지가 아닌 항구에서 내렸는데 귀국에 필요한 법정 최소 비용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도 피해 징후로 본다.

물리적 통제 기준도 확대됐다. 단순 어업 노동으로 알고 취업했지만 원거리 조업선에 태워지거나 계약서에 없는 업무에 투입된 경우, 입국 후 승선 전에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장소에 구금된 경우 등이 새 지표에 포함됐다.

항구에 배가 정박했는데도 특별한 이유 없이 상륙허가서를 내주지 않거나 육상 이동을 막는 행위, 개인 연락기기나 인터넷 등 선내 통신수단 이용을 다른 선원보다 불리하게 제한하는 행위도 피해 판단 기준이 된다.

국적을 이유로 근로조건이나 위생·보건시설 이용에서 차별받는 경우도 노동력 착취 판단 요소로 명시됐다. 내국인 선원보다 비싼 식비를 부담하게 하거나 지급 물량 등에서 차별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가족에게 노동자의 채무를 대신 갚으라고 요구하거나, 하선할 경우 지역 선주 모임을 통해 다른 배에도 타지 못하게 하겠다고 압박하는 행위 등 정서적 통제 기준도 추가됐다. 계약 연장이나 재입국 추천 거부, 비자 무효화, 강제 추방 등을 내세워 부당한 근로조건을 강요하는 경우 역시 피해 징후로 판단한다.

또 피해자가 인신매매 과정에서 범죄를 저질렀거나 착취에 사전에 동의했더라도 피해자로 인정받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지표에 명시했다.

김성철 성평등부 안전인권정책관은 "어업 분야는 선박이나 외딴 작업장 등 외부와 단절되기 쉬운 환경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있어 피해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기 어렵다"며 "이번 지표 개정을 통해 현장에서 피해 징후를 보다 세밀하게 살피고, 조기에 발견하여 보호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혜정 해양수산부 해운물류국장은 "기존 식별지표에 어업분야가 추가 반영됨에 따라 어업분야 이주노동자의 강제노동 예방 및 인권보호 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b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