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충청칼럼] 친일파 자처한 김영환 충북지사

이광형 뉴스1세종충북본부장./뉴스1
이광형 뉴스1세종충북본부장./뉴스1

(충북ㆍ세종=뉴스1) 이광형 기자 =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과 관련해 '친일' 문제가 또다시 소환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104주년 3·1절(삼일절) 기념사를 통해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몇일 뒤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 변제 해법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진영으로 갈라진 여야 정치권의 반응과 논평은 삼척동자도 예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국민 여론인데, 작금의 경제 안보 상황을 고려할 때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 공생관계로 가야 하는 시금석이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과거사 해결과 사과 없이 지나친 친일적 해법이라는 분위기가 상존한다.

김영환 충북지사가 이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언급하며 지역사회가 시끄럽다. 김 지사는 지난 7일 광역지방자치단체장으로선 유일하게 SNS를 통해 '지고도 이기는 길을 택했다. 참회와 사과를 요구하거나 구걸하지 말자'라며 윤 대통령과 정부 입장을 적극 두둔했다.

이어 '일제징용배상'해법과 관련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비판성명에 대해 작심한 듯 "나는 오늘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라며 자극적인 수식어를 사용해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박진 외교부 장관의 애국심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며 "'통 큰 결단'은 불타는 애국심에서 온다"고 덧붙였다.

김 지사의 SNS에는 '지사님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라고 쓴 한덕수 국무총리의 글을 포함해 '정치의 유불리를 배제한 미래를 향한 용기 있는 결단' 등 195개의 댓글이 달렸다.

비판 댓글도 올라 있다. 한 누리꾼은 "충북도민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신들이 참 부끄럽다"고 썼고, 또 다른 네티즌은 "동의하지 못하겠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도 있다"고 꼬집었다.

예상됐듯 민주당 충북도당은 논평을 내 김 지사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하고 "도민의 자존심만 무너뜨렸다"고 강력 비판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도 가세해 도청을 찾아 반발하며 후폭풍이 거세다.

16일로 예정된 충남도와의 '1일 명예도지사' 교환근무도 '친일파 도지사를 거부한다'는 공무원노조의 반발로 취소됐다.

김 지사는 '친일' 발언은 반어법 표현으로 사과할 문제가 아닌 소신임을 분명히 했다.

정치인은 소속 정당의 정체성과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어떤 사안을 놓고 견해를 밝힐 수 있다. 하지만 지역주민을 대표하는 자치단체장은 아무리 특정 정당에 소속돼 있다하더라도 지나친 정치색 표출은 자제해야 한다.

지지세력 간 편가르기 등 갈등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번 정부의 강제징용해법에 대해 대다수 여당소속 단체장들은 김 지사처럼 지지의사를 표출하고 싶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파를 떠나 주민 모두를 아우러야 하는 단체장 입장에서 이로인한 갈등을 염두에 둬 삼갔을 것이다.

그래서 김 지사의 이번 처신은 이례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부적절했다. 공연히 분란을 일으킬 까닭이 없었다는 얘기다.

김 지사는 면책이 많은 국회의원과 달리 정치인인 동시에 한 광역단체 행정의 책임자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도정을 추진한다지만 주민 간 대립과 갈등이 심화하면 도정을 추진할 수 없다.

더구나 진영으로 갈라져 법치를 넘어 '떼법'이 난무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우리의 정치풍토에선 한 치 앞도 나가기 힘들다.

벌써 그가 충북 발전을 위해 작명해 추진 중인 최대 현안 '레이크파크 르네상스'도 이해단체 간 갈등이 표출되고 있지 않는가. 이런 현안 추진을 위해선 정치력만큼이나 도민역량을 모아야 하는 데 분란과 갈등의 중심에 섰다.

그렇다고 김 지사의 분명한 정치 소신을 비판하는 건 아니다. 소속당의 정체성과 달리 소신 없이 목소리 큰 시민사회단체에 끌려 다니는 영혼 없는 선출직 정치인은 유권자를 배신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번 글도 전후 맥락을 보면 그의 충정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피해자와 그들 입장을 지지하는 세력의 감정을 간과한 자극적인 발언 수위가 문제다.

김 지사는 반어법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친일파가 되려한다'는 등의 발언은 지나치고 사고력이 높지 않는 계층에서는 오해하기 쉽다. 필자도 전부는 아니지만 김 지사의 발언 대부분에 동의한다.

일본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의 문제는 일제 군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한 역사적 사실로 100년 아니 1000년이 흘러도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작금의 경제 안보 위기상황 등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한일관계는 재정립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의 지속적인 반성과 사과를, 우리도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게 외교이고 양국 모두 미래를 위한 선택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과거정부는 친일, 토착왜구, 죽창가 등을 언급하며 반일 감정을 부추겨 정치에 이용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 시절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합의나 계약 파기는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며 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문 정부는 5년 집권 내내 더 나은 합의를 위해 노력하지도, 해법을 찾지도 않고 방치해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의 한일문제 해법은 향후 일본의 성의 있는 노력 등이 담보돼야 하겠지만, 정치적 부담을 안고 추진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김 지사의 이번 발언은 이슈를 선점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렇지만 지역 정파 간 갈등과 분란을 유발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했다. 김 지사의 애국심과 공명심에 입각한 '행동하는 양심'은 그가 걸어온 궤적에서 잘 드러나 있다.

대학시절 5·18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 해 옥고를 치른 것에서부터 2021년 민주당이 민주화운동 유공자 가족에 교육, 의료, 취업 등을 지원하는 '민주유공자예우법'을 추진하자 셀프입법이라고 비판하며 유공자증을 반납하는 등 국민적 감동을 샀다.

그러나 지역공동체 대표로서 진영이 대립하는 정치현실에 중앙정치 현안마다 코멘트를 달고 권력자를 두둔하는 언행은 역대 지사들에게서 보지 못한 낯선 행보로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러다보니 김 지사의 이런 행보를 두고 지역 정치권에서조차 권력에 충성심을 보여 중앙정치 무대에 부름을 받기 위한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는 게다.

정치 소신을 굽히거나 잘못된 것에 침묵하란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권력의 심기도 중요하지만 165만 충북도민의 대표임을 인식해 도민의 정서를 먼저 살피길 간곡히 부탁한다.

그게 그가 언급한 '지고도 이기는 길'이 아닐까 싶다. 김 지사와 정파를 달리하는 세력들도 '충북지사는 친일파'라는 등의 왜곡된 선동을 삼가라.

12k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