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피란민의 애끓는 새해 소망 "종전과 평화"
"흩어진 가족도 만나고 못다한 졸업도 하고 싶어요"
"친구·이웃 여전히 바닷물로 갈증 달래고 어둠 속 생활"
- 박건영 기자
(청주=뉴스1) 박건영 기자 = "새해엔 전쟁이 꼭 끝나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우크라이나 피란민 박 알렉산더씨(23)와 아내 웨이카이 아니타씨(23)의 '새해 소망'이다.
고려인인 박씨는 지난해 9월 학창시절부터 만나온 아내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들 부부는 결혼 1년 만인 지난 9월 고국인 우크라이나를 떠나 갑작스럽게 한국을 찾게 됐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공세가 격화하면서다.
당시 박씨가 거주하던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건물 곳곳이 붕괴되고, 전기마저 끊겨 일상생활이 마비됐다.
"평소 걷던 거리에서 폭탄 소리와 비명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출국 이후엔 우리 집이 군인들의 거처가 됐어요."
피란길에 오르면서 함께 살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했고, 박씨 부부는 3년 전 고려인 아버지가 안착했던 한국으로 왔다.
전쟁을 피해 찾아온 도시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지금은 조금 괜찮아졌지만, 마음의 준비 없이 맞은 타국살이가 쉽지만은 않다.
우크라이나에서 박씨는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었고, 웨이카이씨는 대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었다.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학교를 졸업하고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요."
박씨는 한국에 건설 근로자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다른 일은 구하기가 어렵다.
타지에서 새해를 맞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느 나라처럼 우크라이나도 그 해의 마지막 날에는 온 가족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며 기념한다.
올해 마지막 날 역시 평소처럼 좋아하는 음식인 올리비에 샐러드를 만들어 함께 따뜻한 시간을 보내며 소원을 빌 예정이다.
"내년엔 전쟁이 끝나길…."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란민 박 알리나씨(20·여)의 소망도 마찬가지다.
그가 살던 미콜라이프는 전쟁 초기부터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격전지다. 전쟁이 시작됨과 동시에 살던 집과 밀·감자를 심어놓았던 땅은 쑥대밭이 됐다.
터전을 잃은 가족, 이웃 15명과 함께 33㎡(10평) 남짓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벙커에서 지내다가 지난 5월 한국에 왔다.
이후 함께 온 가족들과 반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만족한 삶을 지내고 있다. 12살 막내 동생은 초등학교에 입학해 친구도 사귀었다.
아직도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로 어려움이 많지만, 전쟁이 끝나도 계속 한국에 거주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충북대학교 사회통합프로그램을 통해 한국말과 문화를 배울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 문화를 일찍 접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빨리 한국어를 배워서 더 많은 문화를 알고 싶어요."
알리나씨의 새해 소망 역시 '평화'다. 불과 몇 달 전 어두컴컴한 곳에서 밥은 고사하고 바닷물로 갈증을 달랬던 끔찍한 경험을 겪고 있는 친구와 이웃들이 여전히 조국에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아주 끔찍한 일입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하루라도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장 류보위 대한고려인협회 청주지부장은 "올해 전쟁을 피해 청주로 온 우크라이나인은 50여 가구 정도"라며 "이들은 공장 등에 취업해 일을 하거나 지원받아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pupuman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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