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냉매 쓴 에어컨, 스스로 불붙을 수도…화재 위험물질 검출
최근 5년 냉매 추정 화재 36건…2025년 이후 급증
실외기 알루미늄과 반응해 자연발화 물질 생성…정부 유통 차단 추진
- 구진욱 기자
(서울=뉴스1) 구진욱 기자 = 온라인 등을 통해 유통되는 에어컨용 불법 혼합냉매가 실외기 내부에서 자연발화성 물질을 만들어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관련 화재가 급증하면서 소방당국과 관계 부처는 해외 직구와 온라인 판매 차단 등 공동 대응에 나섰다.
소방청은 국립소방연구원 등과 불법 혼합냉매의 화재 위험성을 조사한 결과, 화재가 발생한 실외기 내부에서 '트리메틸알루미늄'이 검출됐다고 2일 밝혔다.
트리메틸알루미늄은 위험물안전관리법상 제3류 위험물로 분류되는 자연발화성·금수성 물질이다. 공기 중에 노출되면 스스로 발화하고 물과 접촉하면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가연성 물질을 만들어낸다.
소방당국 조사 결과 불법 혼합냉매에 포함된 클로로메테인(R-40)이 실외기 내부 알루미늄 부품과 반응하면서 트리메틸알루미늄을 생성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불법 혼합냉매는 구형 에어컨에 사용하는 R-22 냉매 용기에 클로로메테인을 섞은 뒤 R-22 제품인 것처럼 표시해 판매하는 제품이다.
R-22는 불연성 냉매지만 오존층 파괴 문제로 2023년 이후 생산이 중단됐다. 이후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정식 수입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저가 불법 혼합냉매가 온라인 쇼핑몰과 해외 직구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는 게 소방청의 설명이다.
클로로메테인은 1920~1930년대 냉매로 사용됐지만 높은 독성과 가연성으로 퇴출됐다.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에 따라 냉매 용도의 신규 사용도 금지됐다.
특히 불법 혼합냉매는 처음 주입할 당시에는 에어컨이 정상 작동해 사용자가 위험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에어컨을 가동하는 과정에서 실외기 내부에 위험물질이 서서히 생성되고, 이후 철거나 냉매 재충전을 위해 배관을 절단하는 과정에서 공기나 수분과 접촉하면 발화로 이어질 수 있다.
소방청이 최근 5년간 에어컨 냉매가 원인으로 의심되는 화재를 추적한 결과 모두 36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2년 1건, 2023년 2건, 2024년 6건에서 2025년 13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7월까지 이미 14건이 발생했다. 다른 원인으로 분류됐다가 냉매 관련 화재로 재조명된 사례도 11건에 달했다.
발생 상황별로는 에어컨 철거·냉매 충전 중 발생한 화재가 17건(47.2%)으로 가장 많았다. 에어컨 작동 중 화재가 13건(36.1%), 미가동 상태 4건(11.1%), 원인 미상 2건(5.6%)이었다.
인명피해도 이어졌다. 지난 7월24일 경남 진주의 한 주택 화재 현장에서는 증거물을 수집하던 화재조사관이 실외기 냉매 인입부에서 발생한 불꽃으로 양손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지난 6월에는 인천 강화의 한 주택에서 실외기에 가스를 주입하던 70대 남성이 폭발로 크게 다쳐 닥터헬기로 이송됐다. 같은 달 목포와 지난해 4월 서울에서도 에어컨 냉매로 인한 발화·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소방청은 이례적인 화재 양상이 이어지자 지난달 3일부터 국립소방연구원, 서울·경기 화재감정기관, 경남소방본부와 위험성 규명에 착수했다.
국가화재정보시스템을 활용한 정밀 추적조사와 감정을 통해 불법 혼합냉매에 포함된 클로로메테인이 실외기 알루미늄 부품과 반응해 자연발화성 물질을 생성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국립소방연구원은 감식·감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2차 화재와 사고를 막기 위해 '불법 혼합냉매 대응 현장조사 안전 매뉴얼'을 제작해 전국 화재조사관에게 배포할 계획이다.
정부도 불법 혼합냉매 유통 차단에 나선다.
소방청과 국립소방연구원,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통상부, 한국소비자원 등 관계기관은 지난달 두 차례 회의를 열고 불법 혼합냉매의 해외 직구와 온라인 판매 차단 방안을 논의했다.
앞으로 관계 부처는 불법 혼합냉매의 수입·온라인 유통 차단과 소비자 경보 등 후속 조치를 검토할 방침이다.
소방청은 정식 통관과 품질 검사를 거친 정품 냉매는 안전하다며 시세보다 지나치게 저렴한 냉매나 품질 인증마크가 없는 냉매 용기를 사용하는 업체를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에어컨 냉매 시공은 정식 등록 업체에 맡기고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확인할 수 있도록 시공자 인적사항을 기록·보관할 것을 권고했다.
주영국 소방청 119대응국장은 "불법 혼합냉매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어 사용자가 위험을 인지하기 어렵다"며 "관계 부처와 함께 화재 발생 현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추가로 확인되는 사항은 국민 여러분께 신속히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kjwowe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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