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열차 달리는 한가위…신호장에 멈춘 'KTX 남강릉역'의 꿈'
한때 강릉역 대체할 철도거점으로 추진됐다 신호장으로 축소
김중남 시장 공약 이어 시의회서도 신설론…남부권 숙원 다시 수면 위
- 윤왕근 기자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꽃분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한국인이 사랑하는 가수 나훈아의 대표곡 '고향역'의 한 구절이다. 노래 속 고향역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듣는 이마다 마음속에 하나쯤 품은 역의 풍경을 불러낸다. 철길 옆 코스모스와 작은 대합실, 플랫폼으로 느릿하게 들어오던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같은 모습이다.
오랫동안 기차역은 단순한 교통시설 이상의 공간이었다. 떠나는 이에게는 작별의 장소였고, 돌아오는 이에게는 기다리던 얼굴과 다시 만나는 곳이었다. 명절이면 선물꾸러미를 든 귀성객들이 플랫폼을 메웠고 긴 열차 여행만큼 고향은 천천히 가까워졌다.
하지만 철도의 풍경은 달라졌다. 이제 최고 시속 300㎞의 KTX가 전국을 빠르게 연결한다. 열차가 고향과의 거리를 시간으로 견디게 해주던 시대에서 그 거리를 빠르게 지워주는 시대로 바뀐 셈이다.
역의 역할도 사람을 태우고 내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관광과 산업, 생활권을 연결하고 도시의 성장축을 만드는 교통거점이 됐다.
올 추석 강릉 남부권에서는 이런 '역 이야기'가 밥상머리 화제가 될 법하다.
한때 강릉의 새로운 철도 관문으로 계획됐다가 승객 한 명 태우지 못한 채 단순 신호장으로 남은 '남강릉역'이다.
남강릉역 구상은 원주~강릉 철도 건설 논의가 한창이던 2011년 무렵 등장했다. 구정면 금광리와 현 박월동 일원에 여객역과 차량기지, 신호장 기능을 갖춘 철도거점을 만들고 현 강릉역을 대신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그러나 도심 접근성이 떨어지고 기존 도심 공동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강릉역 지상화 논의가 나오자 지역에서는 철도 지하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셌다. 결국 2013년 구정~강릉역 9.8㎞ 가운데 도심 2.6㎞를 지하화하고 원주~강릉 철도 종착역인 강릉역을 현 위치에 두는 방안이 확정됐다. 남강릉은 여객역 대신 신호장으로 남았다.
결과적으로 현 강릉역은 2017년 강릉선 KTX 개통 이후 경포와 올림픽파크, 안목 등 관광지와 가까운 입지를 바탕으로 동해안의 주요 철도 관문으로 성장했다.
그렇게 한동안 잊혔던 '남강릉역의 꿈'이 민선 9기 들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중남 강릉시장은 후보 시절 구정면과 내곡동, 왕산면, 옥계면 등 남부권의 철도 접근성을 높이겠다며 KTX 남강릉역 신설을 공약했다. 지난 15일에는 국회와 정부를 찾아 신설 필요성을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강릉시도 기초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3일 강원도 철도과와 남강릉역 신설을 협의했으며 한국교통연구원과 국가철도공단 등 5개 유관기관과의 협의를 추진하며 기본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시의회에서도 신설론이 나왔다.
김진용 강릉시의원은 지난 22일 10분 자유발언에서 "다가오는 광역 철도망 시대에 대비해 강릉의 새로운 성장 거점이 될 남강릉역 신설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의원이 주목한 것은 10여 년 전과 달라진 여건이다.
강릉~제진 동해북부선과 삼척~강릉 고속화 사업 등 철도망 확충이 추진되고 있고 구정면 금광리 일원에는 약 67만㎡ 규모의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현 KTX 강릉역의 '흥행' 역시 아이러니하게 '남강릉역'의 신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남강릉신호장~강릉역 약 7.6㎞가 단선이라는 점이다. 강릉역 이용객 증가로, 열차 운행이 늘어나면 증편에 제약이 생길 수 있고 도심에 자리 잡은 강릉역 역시 승강장과 주차장, 환승시설을 추가로 확충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나온 것이 강릉역과 남강릉역의 역할을 나누는 '투트랙 철도체계'다. 강릉역은 도심 관광·상권을 연결하는 중심역으로, 남강릉역은 광역철도와 국가산단 접근, 남부권 교통수요를 담당하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물론 남강릉역에 당장 KTX가 서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다른 지역의 역 신설 사례를 살피고 관계기관과 기본 방향을 논의하는 초기 단계다. 역사 규모와 사업비, 추진 시기, 이용객 수요도 정해지지 않았다. 향후 수요와 경제성 등을 따지는 타당성 검토와 관계기관 협의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
김 의원도 "국가산단 교통·기반시설 계획에 남강릉역을 포함해 이용 수요와 경제성, 국가산단 연계 효과를 분석하고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반영을 위해 강원도와 국토교통부 등과 협의할 것"을 주문했다.
한때 강릉의 새 관문을 꿈꾸다 철도 신호장으로 남은 남강릉. 10여 년이 흐른 지금 주변에는 국가산단이 추진되고 새로운 철도망이 속속 그려지고 있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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