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원주인가"…2차 공공기관 이전 앞두고 다시 불붙은 '영동 vs 영서'
21년 전 혁신도시 원주에 내준 강릉…"이번엔 영동권에 성장거점"
우상호 "유치 의지 없다는 뜻 아냐"…강릉·속초 "공정한 기회 달라"
- 윤왕근 기자
(강릉·속초=뉴스1) 윤왕근 기자
"또 원주에 간다고요?"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강원 강릉에서 정부의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문제가 밥상머리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면서 강릉 등 동해안 지자체들이 유치전에 뛰어든 가운데 강원도는 정부의 '기존 혁신도시 우선' 기조를 고려한 현실적인 대응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강릉에서는 21년 전인 2005년 제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원주와 혁신도시 유치 경쟁을 벌이다 고배를 마셨던 기억까지 소환되고 있다.
강원지역 공공기관 이전을 둘러싼 영동·영서 논쟁의 뿌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릉은 원주, 춘천 등과 혁신도시 유치를 놓고 경쟁했다. 강릉과학산업단지 일원을 후보지로 내세우며 춘천의 행정기능, 원주의 기업도시와 함께 강릉에 혁신도시를 조성해야 영동·영서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그해 12월 원주 반곡동 일원이 혁신도시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강릉의 도전은 무산됐다. 현재 원주혁신도시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한국관광공사 등 공공기관이 자리 잡고 있다.
20여 년이 흘러 2차 공공기관 이전이 추진되자, 강릉에서는 '이번에는 영동권에도 성장거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릉시민 강 모 씨(60대)는 "영호남만큼 갈등이 깊은 영동과 영서의 지역 갈등은 단순히 태백산맥을 사이에 둔 생활권 차이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라며 "20년 전 혁신도시를 비롯해 비중 있는 기업과 기관이 원주와 춘천 등 영서권에만 집중됐다는 피해의식도 있다. 이번에는 왜 동해안에도 공공기관이 필요한지 제대로 따져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우상호 강원지사의 최근 발언이다.
우 지사는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께서 혁신도시 이외 지역에는 공공기관을 이전할 생각이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광역·기초단체장이 노력하더라도 지역이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취지로 말했다.
강릉 지역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강릉시의회는 지난 9일 전체 의원 19명이 참여한 성명을 내고 "정부가 기존 혁신도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특정 지역의 가능성을 사전에 제한하는 근거가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중남 강릉시장도 이달 1일 "공공기관 이전의 근본적인 목표는 분권과 균형발전"이라며 강원도 내부의 영동·영서 균형발전 차원에서도 강릉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논란이 이어지자 우 지사는 21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냉정한 현실을 공유하고 과도한 기대를 주지 않기 위한 것이 다른 의미로 비쳤다"고 해명했다.
공공기관 이전지역을 기존 혁신도시로 한정해선 안 된다는 요구는 강릉에만 그치지 않는다.
속초시의회도 지난 10일 의원 전원이 참여한 공동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구체적인 이전계획이 확정되기 전까지 도내 18개 시군 모두에게 공정한 검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속초시는 관광·해양·환경·안보·복지·체육 등 6개 분야 14개 기관을 유치 대상으로 정하고 동서고속철과 동해북부선 등 교통망 확충을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강릉에서는 시민사회도 가세했다. 지역 전문가와 3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강릉시 공공기관 유치 범시민추진단'은 지난 18일 강릉아트센터에서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대식과 결의대회를 열었다.
추진단은 기존 혁신도시 중심 방식에서 벗어나 영동·영서 균형발전과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공공기관 이전을 요구하고 정부와 강원도를 상대로 유치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동해시민 권 모 씨(40대)는 "부산·울산·경남이나 대구·경북처럼 대도시를 끼고 있는 지역이라면 몰라도 강원도 도시들은 사실 비등비등한 여건 아니냐"며 "왜 춘천·원주·강릉에만 주요 기관을 몰아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국가항만 기능을 갖춘 동해처럼 발전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해양 관련 공공기관이라면 동해에도 충분히 들어설 만한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정부가 구체적인 이전 대상 기관과 지역을 확정한 것은 아니다. 결국 2차 공공기관 이전의 세부 원칙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핵심 변수다.
기존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추가 기관을 집적하는 방식이 굳어질 경우 원주혁신도시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 반면 지역산업 연계성과 지역소멸 대응, 광역자치단체 내부 균형발전 등이 폭넓게 고려된다면 동해안 지자체들은 이를 유치 논리로 활용할 수 있다.
21년 전과 마찬가지로 강릉은 다시 '영동·영서 균형발전'을 전면에 내걸었다. 이번에는 강릉시와 시의회를 넘어 시민사회가 가세했고 속초와 동해 등에서도 비혁신도시에 기회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기에 강원도가 정부의 이전 원칙 속에서 원주혁신도시와 동해안 지자체들의 요구를 어떻게 조율할지도 관심사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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