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묘는 말끔, 의병장 묘엔 풀만 무성…"국가가 나서 관리해야"
'후손 관리' 친일파 민영휘 묘…'풀숲 방치' 항일의병 박화지 선생 묘
"서훈 받지 못해 지자체 관리 어려워" 현실적 문제도
- 한귀섭 기자
(춘천=뉴스1) 한귀섭 기자 =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찾은 강원 춘천의 묘역. 서로 다른 역사의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의 묘역은 관리 상태부터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쪽은 넓게 정돈된 잔디와 잘 갖춰진 석물이 눈에 들어왔다. 반면 다른 한쪽은 무성하게 자란 풀에 뒤덮여 관리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처음 찾은 곳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꼽히는 민영휘의 묘역이다. 민영휘는 한일병합에 협력한 공로로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
동면 장학리에 있는 묘역으로 들어서자 잘 정리된 잔디가 눈에 들어왔다. 봉분 주변에는 망주석과 석물 등이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었고, 묘역을 둘러싼 공간도 비교적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뒤편과 달리 묘역 주변은 시야가 트여 있어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반면 남면 발산리에 있는 항일 의병장 박화지 선생의 묘역을 찾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입구에 세워진 '항일 의병장 박화지 선생 묘역'이라는 표지판만 있었고, 묘역 주변에는 풀이 어린이 키 가까이 자라 있었다. 봉분 앞쪽의 상석과 주변 석물은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지만, 이를 둘러싼 풀은 이미 묘역의 경계를 삼킨 듯했다. 한 발 한 발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야 비로소 묘역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박화지 선생은 1907년 정미의병 당시 의병 소모장으로 활동하며 의병을 모집하고 일본군과 맞서 싸운 인물이다. 유영석·유제곤·박선명 선생 등과 함께 의병 600명을 모집해 춘천 진병산과 가평 주길리 등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화지 선생은 1907년 일본군에 의해 숨진 뒤 마을 주민들에 의해 후동리 야산에 묻혔다가 1974년 현재의 묘역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
이처럼 두 묘역의 관리 상태가 엇갈리는 데는 관리 주체의 차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민영휘 묘역은 후손 등에 의해 관리가 이뤄지는 반면, 박화지 선생 묘역은 후손의 부재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독립유공자 서훈도 받지 못해 지방자치단체의 관리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춘천항일애국선열유산지킴이'가 해마다 1~2차례 박화지 선생의 묘역을 관리하고 있지만, 무성하게 자라는 풀을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이다. 또 묘역 인근에는 종손의 연락처가 적힌 팻말이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남귀우 춘천항일애국선열유산지킴이 운영위원장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지만,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 많다"며 "후손이 없어 제대로 관리되지 않거나 후손이 있어도 각종 문제로 묘역 관리가 되지 않는 곳이 있어 국가가 나서 관련 유적을 관리하고 보전해 후대에 온전히 남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박화지 선생의 의병 활동 이력은 확인되지만, 출생이나 사망 시기, 고향과 주소 등 인적사항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춘천에서도 비슷하게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이 들어온 사례가 있지만, 사망 시기 등 관련 기록이 달라 현재로서는 서훈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관련 자료가 추가로 확인돼야 서훈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han12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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