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막은 올랐지만…예산 끊겨 뿌리 흔들리는 정동진영화제

문체부 표창 받은 영화제, 예산 시의회 문턱 못 넘어…신영극장 운영비도 무산
갈수록 줄어드는지역 영화인…"예산보다 문화정책 필요"

제2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강원 강릉시 강동면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 야외 상영을 위한 대형 스크린과 관람석이 설치돼 있다. 관계자들은 장비와 객석을 점검하며 막바지 개막 준비를 이어갔다.(김진유 영화제 운영위원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8.6/뉴스1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 "영화제는 어떻게든 열 순 있지만…."

제2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6일 오후 강원 강릉시 강동면 정동초등학교.

별빛 아래 스크린이 세워질 운동장에서는 음향과 조명 케이블을 정리하는 스태프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무대에서는 상영 장비 점검이 한창이었고 객석에는 의자가 하나둘 놓였다. 폭염 속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영화제 현수막이 흔들렸고,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주말에 비만 안 오면 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겉으로는 여느 개막 전날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올해 영화제를 준비하는 지역 영화인들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강릉시의회는 최근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정동진독립영화제 지원비 2000만 원과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운영비 3000만 원, 영화문화미디어센터 운영비 5000만 원 등 영화문화 관련 예산 1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제2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강원 강릉시 강동면 정동초등학교에서 스태프들이 행사 시설과 전기·통신 장비를 설치하며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 2026.8.6/뉴스1

강릉 영화계가 예산 문제를 겪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전임 시장이 "영화제가 자립할 시기가 됐다"며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올해는 지방선거를 통해 취임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중남 시장이 추경을 통해 영화문화 예산 복원에 나서면서 지역 영화계도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해당 예산은 강릉시의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19명 가운데 찬성 9명, 반대 10명으로 부결됐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모두 반대표를 던지면서 김 시장이 복원을 추진했던 영화문화 예산은 결국 반영되지 못했다.

이번 예산 삭감은 김 시장 취임 이후 시의회에서 제동이 걸린 대표 사례 가운데 하나다. 앞서 김 시장의 '1호 결재' 사업이었던 민생안정지원금 역시 시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집행부와 의회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김진유 정동진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화가 났다기보다 허탈했다"며 "영화제도 중요하지만 신영극장 예산마저 복원되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특히 우려하는 곳은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다.

신영은 1960년대부터 강릉 시민들의 대표 영화관으로 사랑받았던 옛 신영극장의 역사와 이름을 잇는 공간이다. 멀티플렉스 확산으로 옛 극장이 2009년 문을 닫은 뒤 강릉씨네마떼끄가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으며, 현재는 정동진독립영화제 실내 상영관이자 강원권 대표 독립예술영화관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신영극장 앞에서 만나자"는 말이 자연스러운 약속이었을 만큼 시민들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영화제보다도 신영은 지역 영화인들이 시민과 만나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라며 "그 공간마저 예산이 복원되지 않은 것은 지역 영화계 전체로 봐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제2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강원 강릉시 강동면 정동초등학교에 영화제 천막과 관람객 휴게공간이 설치돼 있다. 영화제는 7일부터 10일까지 정동초등학교와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열린다. (김진유 영화제 운영위원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2026.8.6/뉴스1

영화제는 예정대로 열리지만 예산 삭감은 곳곳에서 흔적을 남겼다.

올해는 자원활동가를 예년처럼 적극 모집하지 못했고 숙박 지원도 축소됐다. 지역 영화인을 위한 단편영화 제작지원 사업도 중단됐다. 지난해 제작지원을 받은 작품은 올해 영화제에서 상영되지만 내년에는 지역 제작지원작을 만날 수 없게 됐다.

15년째 영화제와 함께해 온 스크린 업체도 정상 계약금의 약 60%만 받고 참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스크린 업체뿐 아니라 여러 스태프들도 정상적인 대가를 받지 못하면서도 영화제를 위해 함께하고 있다"며 "모두가 희생하면서 영화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제는 어떻게든 만들 수 있지만 관객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안전관리와 쾌적한 관람환경을 위해서는 반드시 예산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올해 초 지역 영화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김 위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는 민간에서 시작한 영화제가 28년 동안 많은 관객과 함께해 온 가치를 인정해 줬다"며 "반면 강릉에서는 영화제의 존재를 가리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시의회의 '자립' 요구에 대해서는 "자립하면 가장 좋겠지만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무료 영화제여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며 "좋은 영화를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공공문화 활동인 만큼 공적 지원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더 우려하는 것은 영화제보다 강릉 영화생태계의 미래다.

그는 "영상미디어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지역 영화인들의 놀이터이자 생계 터전도 함께 사라졌다"며 "한때 120명 정도 활동하던 지역 영화인이 지금은 20~30명 정도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영화인이 있어야 지역 이야기가 영화가 되고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다"며 "젊은 영화인이 사라지는 것은 지역소멸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단순히 예산만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문화정책이 필요하다"며 "영화뿐 아니라 음악과 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이 서로 연결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제28회 정동진독립영화제는 7일부터 나흘간 예정대로 막을 올린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장편과 단편을 포함한 국내 독립영화 27편이 관객들을 만난다.

상영은 장소를 나눠 진행된다. 7일부터 9일까지는 정동초등학교 야외 상영장에서, 8일부터 10일까지는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상영이 이어진다.

제2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홍보물.(강릉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wgjh654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