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분 쉬고 다시 시동…'38도 폭염' 견디는 아스팔트 위 노동자들
[르포] 강릉 거리노동자들에 얼음 생수 나눔 행사
기록적 폭염에 강원 온열질환 사망 2명 모두 강릉서
- 윤왕근 기자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오, 물 좋아요."
강원 강릉지역 낮 최고기온이 37.9도(경포)까지 치솟은 29일 오후 1시.
월화거리 중앙시장 앞에서 시장 매대 바퀴를 수리하던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 자밀이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생수병을 받아 들며 서툰 한국말로 말했다.
달궈진 아스팔트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잠시 서 있기만 해도 신발 밑창으로 열이 전해졌고, 내리쬐는 뙤약볕에 눈조차 제대로 뜨기 어려울 정도였다.
자밀의 회색 긴팔 티셔츠는 이미 땀으로 짙게 젖어 있었고, 파란 헤어밴드는 물에 빠진 듯 축축했다. 목과 팔을 타고 흐른 땀이 옷자락 끝으로 떨어졌다.
이날 강릉노동인권센터와 국가인권위원회 강원인권사무소,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강릉시 등은 월화거리에서 '이동노동자 생수나눔 및 안전캠페인'을 열었다.
관계자들이 얼음 생수 한 병과 쿨스카프가 담긴 비닐봉지를 건네자, 자밀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밖에서 계속 일하는데 너무 덥습니다. 마침 물도 없어서 힘들었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이런 날씨에는 물이 최고예요."
그는 생수를 손에 꼭 쥔 채 다시 공구를 들고 매대 수리에 나섰다.
조금 떨어진 도로에서는 배달 라이더들이 하나둘 오토바이를 세웠다.
생수를 받아 든 중년 여성 라이더의 목덜미엔 땀이 흘러내렸고, 또 다른 라이더는 헬멧조차 벗지 못하고 생수만 받아 들고 배달을 하러 떠났다.
행사장 인근에서 만난 라이더 A 씨는 "헬멧을 쓰는 순간 안이 사우나가 된다"며 "신호 한 번 기다리는 것도 숨이 턱 막힌다"고 말했다.
얼음 생수를 받아 든 택배기사 B 씨도 "차에서 내렸다 탔다를 하루 수백 번 반복하는데 요즘은 물 한두 병으로는 버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잠시 그늘에 선 이들은 생수를 단숨에 들이켠 뒤 오토바이와 탑차에 시동을 걸었다.
행사장에는 얼음 생수와 쿨스카프가 담긴 비닐 팩이 수북이 쌓였고, 참가자들은 '폭염기간 충분한 수분섭취', '안전이 우선입니다'라고 적힌 파란 피켓을 들고 지나가는 라이더와 택배기사들에게 연신 손을 흔들었다.
이날 캠페인을 통해 강릉을 비롯한 강원지역 이동노동자들에게 얼음 생수 4000병과 쿨스카프 1300개, 헤어밴드 200개, 쿨토시 200개가 전달됐다.
일부 생수는 이동노동자들이 자주 찾는 오토바이 수리점에도 비치돼 언제든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김남순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장은 "택배노동자와 배달노동자, 환경미화원, 돌봄노동자 모두 폭염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며 "사용자가 불분명한 이동노동자들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폭염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재난"이라며 "이동노동자 쉼터 확대와 생수·냉방용품 지원을 더욱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을 찾은 김중남 강릉시장도 "오전 건설노동자들과 만나 현장의 어려움을 들었다"며 "시는 시민들이 삶을 지키며 버텨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더위는 기록적인 수준이었다. 강원지방기상청에 따르면 경포 37.9도, 북강릉 37.6도, 속초 37도, 강릉 36.6도를 기록했다. 삼척지역은 무려 38.2도까지 치솟았다. 강원 동해안에는 폭염경보가 발효 중이며 최고체감온도도 35도를 웃돌았다.
올해 강원지역 온열질환 사망자는 현재까지 2명인데, 모두 강릉에서 발생했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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