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 내려앉은 선율"…호스피스 병상에 전한 선우예권의 위로
22일 하슬라국제예술제 특별공연 '갈바리의 선물' 열려
- 윤왕근 기자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 가을비가 내리던 10월의 어느 오전, 삶의 끝자락에서 피어난 음악의 선율이 고요히 병실을 적셨다.
22일 오전 11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손끝이 머문 곳은 강릉의 호스피스 병원 갈바리의원. 2025 하슬라국제예술제 특별공연 '갈바리의 선물' 무대가 이곳에서 펼쳐졌다.
이날 공연은 환우와 가족, 그리고 봉사자만을 위한 비공개 무대로 진행됐다. 화려한 조명도, 뜨거운 박수도 없었지만 선우예권이 전하는 피아노 선율은 그 어떤 공연보다 따뜻하고 깊게 스며들었다.
첫 곡은 슈베르트의 '즉흥곡 D.899.' 맑고 서정적인 선율이 시작되자 병실의 분위기가 한층 살아났다. 창가에 맺힌 빗방울도 운치를 더했다.
이어 연주된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서곡 주제에 의한 빈의 저녁'에서는 잠시 미소가 번졌다. 빈의 저녁 무렵을 닮은 설렘과 활기가 피아노 선율로 살아났다. 그 순간만큼은 고통도, 병도 잠시 멀어졌다. 특히 이 곡은 피겨여왕 김연아가 2007~2008 시즌 쇼트 프로그램 음악으로 사용해 관객들에게도 친숙하다.
이후 쇼팽의 프렐류드 24곡 중 일부가 이어졌다. 선우예권은 건반 하나하나에 삶의 아름다움과 회한을 담아내며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이윽고 병실 안에 '앙코르'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외침은 단순한 공연 요청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처럼 들렸다.
앙코르 무대에서 선우예권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Träumerei)', 이어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연주했다. 꿈결 같은 슈만의 곡은 위로로, 불꽃처럼 타오른 리스트의 곡은 생의 찬가로 병동을 가득 채웠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에 이어 2번째로 열린 갈바리의원 특별공연이다. 올해 예술제의 주제 '선물(Gift)'처럼, 예술가의 재능을 하늘이 준 선물로 보고, 그 재능을 나누는 순간 예술이 완성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조재혁 예술감독은 "예술이 누군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순간, 그것이 진짜 선물"이라고 말했다.
한편, 갈바리의원은 1965년 문을 연 아시아 최초의 호스피스 병원으로, 호주에서 파견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설립했다.
'호스피스'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시절부터 이곳은 생의 마지막 길을 함께 걸어온 공간이다.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삶을 마주했고, 또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다.
선우예권은 이날 무대에 이어 23일 오후 7시 30분 '하슬라크 Ⅰ', 25일 오후 7시 '하슬라와 라카이 : 라카이 루아우 시즌10 상심열목(賞心悅目)' 무대에서 다시 관객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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