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 떴는데 행정은 뒷짐?…'전북 북페어' 자생력 시험대

['북페어 성지' 전북, 흥행 이면의 딜레마]③ 위상 못 따라가는 낡은 행정
전국에서 인파 몰리는데 의원은 "그 정도인지 몰랐다", 전북도는 "안가봐"

편집자주 ...'전주책쾌'와 '군산북페어'는 민간 주도 기획이 일궈낸 대체 불가한 문화 자산이다. 그러나 무대 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흥행을 이끄는 기획자들은 예산 불안정에 시달리고, 거점이 되어야 할 지자체는 낡은 인식에 머물러 있다. 이에 3회에 걸쳐 흥행 이면의 딜레마를 조명하고, 단발성 이벤트를 넘어 자생적 책 생태계로 나아가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전북 군산시 나운동 군산회관에서 열린 '군산북페어' .ⓒ 뉴스1

(전주=뉴스1) 장수인 기자

"전국적으로 이렇게 관심이 높은데 시 차원의 전폭적인 예산 지원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서울의 한 출판사 대표 A 씨가 던진 질문에 한 군산시의원은 "군산북페어의 위상이 그 정도인 줄 몰랐다"고 답했다고 한다. 오히려 "사람이 많아 공간이 좁은데 위험하지 않냐", "관이 관리하지 않고 민간 기획자에게 맡기는 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민간 주도 방식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심지어 "높은 분이 오면 이야기하게 페이퍼를 작성해 보내라"는 요구까지 덧붙였다.

전국구 흥행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겨진, 전북의 북페어가 마주한 지역의 뼈아픈 민낯이다.

유행처럼 번진 북페어의 '환상', 그리고 민간 기획의 힘

최근 전국 지자체마다 유행처럼 책 문화 축제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출판인들은 뚜렷한 철학 없는 행정 편의주의적 행사는 '환상'이자 '환각'이라고 꼬집었다.

한 아트북 출판사 대표는 "지자체들이 앞다퉈 북페어를 열어 사람들이 몰리지만, 선명한 방향성을 보여주는 곳은 드물다"며 "사람이 빽빽하게 모였다가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책을 덜 읽고 덜 사보지 않나. 지자체나 출판사 모두 북페어를 지나치게 단발성 이벤트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주와 군산이 전국구 성과를 거둔 핵심 동력도 '관의 통제'를 벗어난 '민간 기획의 역량'으로 분석된다.

A 씨는 "관 주도의 축제는 행정 목적에 도구화되거나 관료화되기 쉽지만, 군산북페어는 출판사로서 뼛속 깊이 존중받는 느낌을 준다"고 극찬했다.

그는 "운영진의 세심한 배려는 물론, 디자인이나 프로그램, 하다못해 행사장 플레이리스트까지 서울의 행사들보다 탁월하고 촌스러운 구석이 하나도 없다. 이는 오롯이 민간 기획자들의 뾰족한 네트워크와 기획력이 발휘된 결과"라고 강조했다.

김광철 군산책문화발전소 대표(오른쪽)와 임주아 작가. 2026.9.16 ⓒ 뉴스1 유경석 기자
기획자 '열정'에 기댄 구조…한발 물러선 광역지자체

군산시와 전주시는 현장의 성과를 거울 삼아 동아시아 교류 등 외연 확장을 꿈꾸고 있지만, 실질적인 예산의 벽 앞에서 매년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에 김광철 디렉터와 임주아 총괄기획자의 헌신적인 '열정페이'에 아슬아슬하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14개 시군을 아우르며 출판 문화의 거점 역할을 뒷받침해야 할 전북도의 태도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전주나 군산 행사가 잘 된다고 듣긴 했지만, 아직 못 가봤다"고 털어놨다. 예산 지원에 대해서도 "특정 시군만 지정해 주기는 어렵다"며 "시군 단체장들이 중점 사업으로 정해 도에 협의하러 오면, 그때 국가 예산 확보 등을 위해 같이 뛸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시군이 먼저 판을 짜서 오지 않으면 선제적으로 협력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 1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개최 기자회견에서 주요 선정작 등 세부 계획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영덕 마켓위원장, 박 이사장, 정한석 집행위원장, 박가언 부집행위원장.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열린다. 2026.9.1 ⓒ 뉴스1 윤일지 기자
제2의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꿈꾸며

현장에서는 지금의 전북 북페어를 과도기로 진단한다. 마이너하게 시작했던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치열한 경쟁력을 갖추며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했듯, 군산과 전주의 북페어 역시 명실상부한 출판 문화의 랜드마크로 도약할 비전을 품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출판사 대표는 "지방, 소도시의 북페어라는 수식어는 이제 낡은 레토릭(rhetoric)에 불과하다. 그저 '군산북페어', '전주책쾌'라는 고유한 브랜드 자체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 대표는 "전국 지자체마다 일종의 유행처럼 '북페어'를 시작하는데 그럴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지자체는 다른 걸 개발했으면 좋겠다"면서 "군산북페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았으면 좋겠다. 군산북페어가 가진 특징은 군산이라는데 방점이 찍힌 게 아니라 그 팀이 하는 지역이 군산인 것. 그건 지방과 수도권의 경계도 아니고 그냥 거기는 '군산북페어'"라고 강조했다.

한 출판 평론가 역시 "북페어가 인기를 얻은 건 불과 몇몇 년밖에 안 됐는데 무색무취의 북페어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도 전북의 북페어는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있다"며 "'고유한 색깔을 어떻게 하면 잃지 않고 뾰족하게 할 것인가'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전북의 북페어를 보면 젊은 인구가 유입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이런 북페어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고, 관심이 없는 분위기"라며 "지자체의 투자로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상품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만 명의 발길을 돌려세운 민간의 뾰족한 기획력은 이미 증명됐다. 이제는 '몰랐다'며 뒷짐 진 행정이 답할 차례다.

soooin9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