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멈추고 만나러 오라"…'군산 북페어' 김광철 총괄기획자

[북페어 성지 전북, 흥행 이면의 딜레마]② '역대 최대' 군산 북페어의 한계
"철 지난 관 주도 북페어들…관 주도 벗어나 기획 권한, 과감히 위임해야"

편집자주 ...'전주책쾌'와 '군산 북페어'는 민간 주도 기획이 일궈낸 대체 불가한 문화 자산이다. 그러나 무대 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흥행을 이끄는 기획자들은 예산 불안정에 시달리고, 거점이 되어야 할 지자체는 낡은 인식에 머물러 있다. 이에 3회에 걸쳐 흥행 이면의 딜레마를 조명하고, 단발성 이벤트를 넘어 자생적 책 생태계로 나아가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김광철 군산책문화발전소 및 책방 '그래픽숍' 대표 2026.9.16 ⓒ 뉴스1 유경석 기자

(군산=뉴스1) 장수인 기자

"행사 날이면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의 군산행 버스가 늘 만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이제 군산만의 축제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국내외 204개 팀이 참여하며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독립출판 축제 '군산 북페어'. 행사를 총괄 기획한 김광철 대표가 전국적인 호응을 실감한 순간은 의외로 서울발 군산행 버스에서 시작됐다.

실제로 군산 북페어 방문객의 절반 이상은 서울 등 수도권과 전주·대전 등 다른 지역에서 찾아온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군산까지 찾아오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봤다. 기존 북페어에서 상대적으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던 전시와 포럼, 토크 등을 통해 동시대 출판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한국 출판계에서 개성 있는 작업을 이어가는 중소규모 출판사와 창작자들이 마켓의 중심을 이루는 점이다.

기획 방향과 대중성 사이의 타협에 대해 그는 단호했다. 김 대표는 "기획 방향을 대중성과 타협한 적은 없었다"며 "기획자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대중이 흥미로워할 방식으로 전달하는 게 기획자의 역량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절한 형식을 찾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북페어에 대한 지역 문화계 인사들의 의견이나 요구가 시대에 잘 맞지 않는 경우는 있다"며 "그분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가 간혹 있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헤아리고 수렴하는 것도 지역 북페어 기획자의 과제 중 하나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군산시 나운동에 위치한 시민문화회관. ⓒ News1
건축 유산과 어우러진 로컬리티…"현실 장벽은 전문 기획 인력 부재"

행사는 김중업 건축가의 유작이자 구도심의 건축 유산인 군산시민문화회관을 주 무대로 삼아 열려왔다. 올해는 근대 생활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말랭이마을까지 영역을 넓혀 만화 마켓 '만화당'을 선보였다.

김 대표는 "방문객들이 시민문화회관에만 머물지 않고 시내를 소요하며 군산의 정취와 매력을 느끼기를 바랐다"며 "군산의 기억과 생활이 뒤섞인 거리에서 북페어가 열리는 것 자체가 고유한 로컬리티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주책쾌가 출판 유산을 '책쾌'로 정체화했듯, 지역 북페어는 어떤 형태로든 자신만의 로컬리티를 담아야 서울 중심의 대형 도서전과 다른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규모가 큰 만큼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적인 한계도 뚜렷하다. 김 대표는 가장 큰 장벽으로 '전문성을 갖춘 기획자 그룹의 부족'을 짚었다.

그는 "북페어는 먹거리 축제와 달리 문화 산업의 쌀인 책과 출판을 다루기에 전문 지식과 경험이 필수적"이라며 "실무를 함께 운영할 기획자 그룹이 부족한 것은 군산뿐 아니라 전국 로컬 북페어의 공통적인 문제"라고 털어놨다. 늘어나는 국내외 참가사들에 숙박, 맛집, 도시 연혁 등을 담은 상세 안내 책자조차 제작해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 역시 결국 인력과 예산의 한계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군산북페어 2026.9.16 ⓒ 뉴스1 유경석 기자
"관 주도 벗어나 자율성 줘야"…판매보다 '교류'의 장으로

김 대표는 지역 북페어가 일회성 행사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문화 생태계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행정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꼽은 해법은 '과감한 위임'이다. 군산 북페어가 지금의 색깔을 갖출 수 있었던 것도 담당 부서인 군산시립도서관이 기획 과정에서 민간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여전히 철 지난 내용과 형식의 관 주도 지역 북페어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런 방식의 미래는 밝지 않다"며 "지자체가 민간 기획자에게 기획 권한을 과감히 위임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행정이 손을 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산과 행정적 기반은 안정적으로 지원하되 콘텐츠와 방향 설정은 전문 기획자에게 맡기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북페어를 바라보는 참여자들의 시선도 달라지길 바랐다. 김 대표는 "주최자나 참여자 모두 '판매'보다는 '만남'과 '교류'에 방점을 두었으면 한다"며 "출판인과 서점인, 창작자가 한자리에 모이고 평소 만나지 못했던 독자와 관계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북페어가 가진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디지털 알고리즘에 갇힌 현대인들에게 오프라인 축제 현장이 지닌 힘을 전했다.

"우리는 관심사와 흥미가 빅테크의 알고리즘 안에서 조종당하다시피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떨치고 나와 현실을 탐험해야 합니다. 북페어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작은 세계와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이 무수히 있습니다. 클릭을 멈추고, 만나러 오십시오."

soooin9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