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만세"…3·1절에 전북 순국선열 발자취 따라가볼까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신흥학교 기념비
오수 3·1 독립운동 기념탑, 완주 독립운동 공원
- 이지선 기자
(전북=뉴스1) 이지선 기자 = 대한의 독립을 목놓아 외쳤던 3·1운동이 1일 103주년을 맞았다. 1919년 전북지역에서도 독립을 염원하는 뜨거운 함성이 곳곳에서 울려펴졌다. 3·1운동 103주년을 맞아 당시 전북지역의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이 남긴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봤다.
◇호남 최초 '군산 3·5 만세운동'
군산은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 운동이 벌어진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군산의 만세운동은 당시 구암동에 위치해 있던 '영명학교'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영명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다니던 김병수가 1919년 2월28일 독립선언서 200장을 고향으로 들고왔고, 이를 영명학교 교사 이두열과 박연세, 송현호, 고석주, 김수영 등에게 전했다.
이들은 독립선언서 3500장을 추가로 인쇄해 지역의 기독교 신자와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태극기를 만드는 등 조용히 만세 운동을 준비했다.
그러던 3월4일 새벽 경찰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고석주·이두열 선생을 체포해갔다.
이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원래 계획했던 3월6일에서 거사를 하루 앞당겨, 5일 교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군산경찰서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당시 군산에서는 이날부터 5월까지 28차례의 시위가 열렸다. 참여 인원은 3만7000여명이었으며, 이 중 53명이 숨지고 72명이 실종됐다. 195명은 옥살이를 겪었다.
국가보훈처는 올해 3월의 독립운동가로 호남 최초 만세운동인 군산 3·5만세운동의 주역 이두열·고석주·김수남·윌리엄 린튼 선생을 선정했다.
정부는 이두열·고석주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김수남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린튼 선생에게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이들처럼 3.1운동과 관련해 대통령표창이나 애족장, 독립장 등을 받은 군산 출신 인물은 모두 34명이다.
군산 3·5 만세운동을 기억하기 위해 군산시 구암동에는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이 설립됐다.
기념관 역사재현실에서는 100여년 전 군산에서 울려 퍼졌던 함성과 군산 만세운동의 주요 인물들의 음성을 들으며 마치 그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가져볼 수 있다. 또 태극기 만들기나 태극기 전파하기, 만세운동 전파하기, 독립군 기념촬영 등 직접 체험하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초등학생도 외친 대한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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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10일 전북 임실 오수에서도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 당시 오수보통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이광수 선생은 서울에서 손병희 선생으로부터 독립선언문을 받아 내려왔다.
이후 3월10일 오전 첫 교시 쉬는시간에 보통학교 학생들을 불러모아 시가지와 오수역 일원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보통학교 학생 신분으로는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만세운동을 전개한 사례로 꼽힌다.
오수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이처럼 학생들을 이끌고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이광수 선생의 업적을 기르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작은 아이들이 외치기 시작한 만세는 임실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그 소리를 키웠다.
특히 오수 장날에 열린 만세운동에는 인근 순창과 남원, 장수 주민들까지 1000여명이 모여 뜻을 함께했다.
이후 임실과 청웅, 지사, 강진, 신덕 등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일제의 무장 진압으로 사망자가 늘어나자 자진 해산됐다.
이후 오수중학교 인근에는 임실군 3·1운동 발원지를 기억하기 위해 3·1독립운동 기념탑이 세워졌다.
독립 운동에 참여했던 민중과,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순국선열 그리고 오수보통학교 어린이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전주신흥고등학교 3.13 만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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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신흥고등학교는 1919년 전주 3·1운동(3·13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전주지역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3월5일 군산에서 만세운동이 감행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일본 경찰은 전주 지역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신흥학교와 기전학교를 비롯한 전주 시내 학교에 강제 방학 조치를 내렸다. 이에 신흥학교 학생이던 김병학 등은 학교 지하실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인쇄하면서 만세시위에 필요한 준비를 진행했다.
신흥·기전학교 학생들은 거사 당일인 1919년 3월13일, 채소가 들어있는 것처럼 위장한 가마니 속에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넣어 전주 남문 장터까지 무사히 운반했다.
곧이어 정오 무렵 남문에서 울려 나오는 인경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천도교·기독교인 및 신흥학교·기전여학교 학생 등 150여명은 남문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때 신흥학교 학생들은 시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했으며, 기전학교 여학생들은 태극기를 나눠줬다.
시위는 오후 11시까지 서너차례 계속됐고, 다음날 오후 3시에도 군중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일제는 김병학과 고형진, 남궁현, 김점쇠, 이기곤, 김경신 등 신흥학교 학생들을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체포했고, 모두 실형 1년을 언도받았다. 또한 이 외 신흥학교 학생 3명이 일제의 고문에 옥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북 전주신흥고등학교 입구에는 전주 3·1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또 신흥고·중학교 앞 버스정류장은 3·1운동 기념 승강장으로 꾸며졌다.
◇완주군 독립운동 추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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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먼저 시작된 만세운동은 인접한 완주군으로 퍼져나갔다. 3월17일에는 완주군 초포면 송전리 들판에서, 3월21일에는 완주군 봉동읍 장기리 장터에서, 3월24일에는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완주 출신의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28위의 위업을 기리고 교육장을 마련하기 위해 경천면에는 '완주군 독립운동 추모공원'이 조성됐다. 총 1만446㎡ 부지에 사당, 기념관, 관리사, 정각이 건립돼 있다.
공원 내에는 독립운동 기념탑 뿐 아니라 6·25 참전 기념탑, 베트남 참전 기념탑 등이 건립돼 나라사랑과 민족정기를 드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letswin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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