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광 작품 432점 수장고서 '긴 잠'…도립미술관 건립 수년째 표류

문체부 타당성 평가서 3차례 '부적정'…인지도·연구자료 부족 지적
2021년 기증 후 단 한 번도 전시 못 해…도 "사업 추진 재검토"

제주도가 기증받은 중광 작품 '무제'.(제주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뉴스1

(제주=뉴스1) 강승남 기자 = 제주도가 중광 스님의 작품 수백점을 기증받아 추진한 '도립중광미술관' 건립 사업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기증받은 작품도 수장고에 보관된 채 단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했다.

30일 제주도와 문화예술계 등에 따르면 중광(重光·1934~2002·속명 고창률)은 고인이 된 이외수 작가, 천상병 시인과 어울리며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중광은 1963년 통도사에서 출가했지만 불교 계율에 얽매이지 않는 기행(奇行) 탓에 1979년 승적을 박탈당했다. 그는 스스로 '걸레'라고 칭할 만큼 승속(僧俗)의 경계 없이 살았다. 형식과 틀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시와 그림, 영화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제주도는 2021년 7월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으로부터 중광 작품 432점을 기증받았다.

이를 계기로 제주시 한경면 저지문화지구에 전시실과 수장고 등을 갖춘 '제주도립 중광미술관'(연면적 940㎡) 건립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사업비는 50억 원이었다.

이후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2021년 10월)와 제주도의회 공유재산관리계획 심의(2021년 12월) 등의 절차를 마쳤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중광미술관 건립 타당성 평가에서 2022년 5월과 11월, 2023년 11월 등 3차례에 걸쳐 부적정 판단을 받았다.

당시 문체부는 중광에 대한 인지도가 낮고 연구자료도 부족해 작가 개인의 이름을 내건 공공미술관을 건립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봤다.

지난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개정되면서 공립미술관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를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문체부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제주도 단독으로 중광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기는 어려워 사업 재추진 여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주도가 발표한 중광미술관 건립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기증받은 작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도 과제로 떠올랐다.

현재 중광의 작품들은 제주도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수년째 보관돼 있다.

제주도는 작품을 기증받은 이후 단 한 번도 중광의 작품을 전시하지 않았다.

제주도 관계자는 "문체부 사전평가에서 나온 지적 사항의 보완 여부와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사업 추진을 재검토할 방침"이라며 "미술관 건립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아 전시 등의 계획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내 문화계에서는 미술관 건립을 위해서라도 중광에 대한 인지도를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다른 공공미술관에서 중광의 작품세계를 알릴 수 있는 전시회를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

ks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