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도 귀했던 제주…소중함 담은 '특별한 밥'의 기억
[제주어 가게로 보는 제주 Ⅱ] ⑤ 곤밥
'곱다-고운-곤'의 변화 과정 거쳐…음식점 상호로 주로 쓰여
- 강승남 기자
(제주=뉴스1) 강승남 기자 = 음식 문화의 다변화로 쌀을 주식으로 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2025년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3.9㎏이다. 30년 전인 1995년 106.5㎏과 비교하면 52.6㎏, 49.4% 줄어 사실상 '반토막' 났다.
국가데이터처가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62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1인당 연간 양곡 소비량은 1982년을 기점으로 40년 넘게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오래전 제주에서 쌀밥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밥이 아니었다. 쌀이 귀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쌀이 귀했던 배경에는 섬의 자연조건이 있었다. 화산섬 제주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거나 바다로 흘러가 논을 만들기 어려웠다. 일부 지역에서 벼농사가 이뤄졌지만, 제주 전역으로 보면 쌀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곡식이었다.
그래서 논농사가 가능했던 마을은 특별했다. 예부터 제주에서는 물이 좋아 논을 일굴 수 있었던 곳으로 '일(一)강정', '이(二)번내', '삼(三)도원'이 전해진다.
'일강정'은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이번내'는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의 옛 지명 '번내'를, '삼도원'은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의 도원을 가리킨다.
오늘날 제주해군기지, 또는 민군복합형관광미항으로 더 많이 알려진 강정마을이 '일강정'이라 불린 것도 물이 넉넉하고 땅이 기름져 벼농사를 할 수 있었던 데서 비롯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밥은 과거 제주에서 제사와 차례, 혼례 같은 집안 대소사 때에야 상 위에 올렸다. 제주 사람들은 흰쌀로 지은 밥이 다른 잡곡밥보다 희고 고와 '고운 밥', 곧 '곤밥'이라 불렀다.
'곤'은 '곱다'에서 온 형태이다. 제주어연구소는 '곱다-고운-곤'의 변화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곤'이라는 말에는 희고 고운 쌀의 빛깔과 함께, 귀한 것을 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래서 '곤밥'은 일상의 밥이라기보다 특별한 날의 밥에 가까웠다. 어떤 집에서는 큰일을 치르기 위해 쌀을 모았고, 마을 아낙들은 행사에 쓸 쌀을 마련하기 위해 쌀 계를 조직하기도 했다.
제주에서는 흰쌀로 만든 시루떡을 '곤친떡', 흰쌀로 만든 가루를 '곤썰 를' 또는 '곤ᄊᆞᆯᄀᆞ루', 흰쌀로 지어 제사상 등에 올리는 밥을 '곤메', 흰쌀로 죽을 쑨 것을 '곤죽'이라고 했다. 다.
쌀의 소중함을 알기에 오늘날 '곤밥'은 음식점 간판에도 남아 있다. 제주시 애월읍의 '곤밥보리밥', 제주시 조천읍 '곤밥', 제주시 이도2동 '곤밥에 도새기' 등이 대표적이다.
드물지만 제주 밖에서도 '곤밥'을 상호로 내건 업체가 확인된다. 이들 역시 대체로 한정식을 주 메뉴로 하는 음식점이다.
제주에서 귀한 밥의 이름이 오늘날에는 정갈한 한 끼, 제대로 차린 밥상을 뜻하는 상호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쌀 소비가 줄어드는 시대 '곤밥'이라는 말은 오히려 쌀밥이 얼마나 귀했던 음식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ks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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