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해녀 이야기]②인권 논란 부른 1962년 해녀 수족관

산업박람회서 해녀 물질 실연…인권 침해 비판

편집자주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올해로 10년이다.'뉴스1 제주본부'는 2차례에 걸쳐 다양한 기록과 증언 속에 남은 이색적인 해녀 이야기를 찾아 그들의 삶과 바다를 새롭게 들여다본다.

1962년 산업박람회 당시 운영된 해녀 수족관.(김동연 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뉴스1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해녀는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신비로운 존재이지만 60여년 전에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제주민예총 이사장 등을 지낸 김동현 작가의 논문 '시선의 정치학과 내부식민지의 탄생(2021)'에 따르면 1962년 5월10일 서울 경복궁에서 5·16 1주년을 기념하는 산업박람회가 개막했다.

이 박람회 최고의 인기는 해녀들이 수족관에서 물질을 직접 보여주는 '해녀 실연'이었다.

해녀들은 서귀포 해변가를 재현한 약 134㎡(40.5평) 규모의 수족관에서 수산물을 캐는 장면을 실연했다. 해녀들은 제주가 아닌 부산에서 올라온 5명이 참여했다.

이 실연은 반공관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당시 시대상을 고려할때 반공관을 제외하면 실제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았던 곳은 수족관이라고 볼 수 있다. 관람료는 100환으로 지금 물가를 반영하면 1만원 정도다.

그러나 해녀 실연은 인기만큼이나 논란도 컸다고 한다. 이 박람회의 '해녀 실연'은 지금의 '해녀 공연'과는 달랐다.

일부 관람객과 언론은 살아있는 사람을 전시품으로 만든 인권 유린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1962년 5월 10일 보도에서 "산업발전상이나 국산품의 품질과 제작과정을 살펴봐야 할 기업가와 기술자들까지 해녀가 실연하는 수족관으로 몰려드는 상황을 박람회 취지에 맞지 않는 현상"이라고 봤다.

동아일보는 1962년 5월 6일 '6일부터 중지-박람회의 해녀실기'라는 기사에서 재경 제주 학생대표들이 해녀관의 위생시설과 기타 시설이 미비하다며 해녀 출연의 즉시 중지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주최 측은 해녀들의 노동 실태를 알릴 수 있는 다른 시설을 갖출 때까지 출연을 중지하기로 했다. 4월 20일 박람회 개막 이후 16일 동안 이어졌던 해녀 실연은 결국 5월 6일 중단됐다.

당시 논란은 박람회가 끝난 뒤에도 언론에 등장했다. 동아일보는 6월 7일 박람회를 결산하면서 이 사건을 '해녀의 인권을 흙탕물에 담은 수족관'이라고 표현했다.

물질 준비하는 해녀(자료사진)/뉴스1

김동현 작가는 이 해녀 실연이 제국주의 시대 아프리카 원주민을 서커스장 등에 전시했던 사례와 일본이 1903년과 1907년 전시회에서 조선인을 전시한 사례 등 유사 사례로 소개하며 식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김 작가는 해녀 실연을 단순한 이색 전시가 아니라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사이의 위계를 드러낸 사례로 분석했다.

김 작가는 "1962년 산업박람회의 개최 목적은 혁명과 반공, 국민재건과 과학이 결합한 체제 선전의 과시적 재현"이라며 "도시(문명)·바다(미개), 보는 자·보여지는 자, 남성·여성 등의 구분을 차별화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부 신문에서 해녀를 '산업 전사'의 주체로 호명하고 있지만 당시 실연 장면을 '수중 묘기'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해녀 실연'은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었다"며 "'보는 자'의 욕망이 만들어낸 시각적 장치이자 식민주의적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했다.

kd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