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제 이름 아시나요"…75년 만에 호적 찾은 4·3 유족 오열

고계순 씨, "4·3 끝나면 이름 지어주겠다"던 친부 희생
작은아버지 딸로 살아오다 올 2월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8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70여 년만에 친아버지의 자녀로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한 고계순 씨(78)가 친아버지의 영정을 품에 안고 오열하고 있다. 2026.4.3 ⓒ 뉴스1 오미란 기자

(제주=뉴스1) 강승남 기자 = "아버지, 제 이름은 알고 있나요."

제주4·3 사건으로 친아버지를 잃고 작은아버지의 딸로 살아오다 70여년 만에 친아버지의 자녀로 이름을 올린 한 유족이 소개돼 울림을 남겼다.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8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서는 올해 2월 가족관계 정정을 통해 비로소 친아버지의 자녀로 이름을 되찾은 고계순 씨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78년 전 제주 조천읍 와흘리. 한 중산간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름 없이 세상에 나왔다.

아버지는 "난리가 끝나면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말했지만,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아이는 두 살이 되도록 이름 없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토벌대가 마을로 들이닥쳤고, 가족들은 아이를 마루 밑에 숨겼다. 그 사이 아버지는 이유도 없이 끌려갔다.

어머니는 이후 제주시 봉개동 한 밭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찾았다. 아버지 발에는 끌려가던 날 신었던 꿰맨 양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중산간 마을 소개령이 내려지자 가족들은 해안가로 옮겨갔고, 작은아버지는 아이를 ‘고계순’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딸로 호적에 올렸다.

그렇게 평생을 작은아버지의 딸로 살아온 고 씨는 올해 2월, 70여 년 만에 친아버지의 자녀로 이름을 되찾았다.

그동안 가족관계등록법상 생부가 행방불명돼 유전자 검사가 불가능한 경우 친자 관계를 인정받기 어려웠지만, 제주4·3특별법에 특례 규정이 마련되면서 4·3으로 인한 가족관계도 확인·결정이 가능해졌다.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8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유족 고계순 씨(78)의 사연이 소개되자 김민석 국무총리와 우원식 국회의장 등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6.4.3 ⓒ 뉴스1 오미란 기자

제주도에 따르면 희생자와 친생자 관계 확인을 요청한 가족관계 정정 신청은 총 221건에 이른다. 올 2월 고 씨 등 4명이 처음으로 친부모 자녀로 인정됐다.

제주도는 친생자 관계 인정이 본격화된 것을 계기로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심사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ks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