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흘러도 한스러워"…제주4·3평화공원 곳곳 '소리 없는 아우성'

위패봉안실, 무명신위, 행방불명인 표석 등에 추모 발길
유족 채혈 부스 운영도…"유해 발굴·신원 확인 더 속도 내야"

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에서 4·3 희생자 유족들이 제를 지내고 있다. 2026.4.3 ⓒ 뉴스1 오미란 기자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제주4·3평화공원 곳곳은 유족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했다.

이날 오전 8시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 4·3 희생자 위패 1만 5126위가 봉안돼 있는 이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유족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족들은 마을별로 가지런히 놓인 위패들을 눈길로, 손길로 살피다가 가족의 이름이 새겨진 위패 앞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모의 시간을 보냈다. 고요 속에 들리는 건 한숨과 흐느낌 뿐이었다.

국화꽃을 들고 위패봉안실을 찾은 유족 김성진 씨(80)는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위패 앞에서 두 손을 모은 채 긴긴 묵념을 했다.

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서 추모객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2026.4.3 ⓒ 뉴스1 오미란 기자

김 씨는 "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가 모두 돌아가실 때 어머니께서는 절 안고 나무 밑에 숨어 겨우 살아남으셨다. 그때 제가 울지도 않는 걸 보고 어머니께서 '넌 오래오래 살아라'라고 하셨다는데, 그렇게 벌써 78년 세월이 흘렀다. 한스러운 마음은 여전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봉안실 가장 안쪽에 있는 무명신위 앞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무명신위는 4·3 발발 후 7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름도, 유해도, 기록도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들을 기리는 3m 높이의 위패 조형물이다.

참배를 마친 유족 강동호 씨(45)는 "4·3평화공원에서 제일 슬픈 공간이 바로 여기 아니겠느냐"면서 "4·3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말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유해 발굴도, 신원 확인도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했다.

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서 추모객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2026.4.3 ⓒ 뉴스1 오미란 기자

같은 시간 행방불명인 표석.

이곳은 4·3 때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의 개인 표석 4138기가 설치된 공간이다. 다른 지역 형무소 수감 중 6·25전쟁 직후 집단 총살을 당하거나 불법 군사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아 제주에서 형 집행을 당하고, 6·25전쟁 직후 예비 검속에 의해 제주에서 행방불명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여동생과 함께 이곳을 찾은 김덕수 씨(86)는 아버지 표석 앞에 제를 올리며 그 넋을 기렸다. 김 씨는 "4·3 때 행방불명되거나 희생된 가족만 무려 9명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오빠, 언니… 형제 중에서는 이렇게 둘만 남았다"며 "언제 돌아가신지도 몰라 추념일 때마다 여기서 제를 올린다. 매번 먹먹한 마음"이라고 했다.

한편에는 채혈 부스도 마련됐다.

일찍이 유해가 발굴됐음에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들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하기 위해 유족들의 혈액을 채취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내내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수년간 대를 이어 채혈에 참여한 끝에 가족의 유해를 되찾았다는 사례가 최근 속속 나오고 있어서다.

제주4·3평화재단은 이곳에서 유족들을 대상으로 채혈을 하는 동시에 친·외가 방계 8촌까지 더 많은 유가족들의 채혈 참여가 신원 확인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적극 홍보했다.

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에서 4·3 희생자 유족들이 제를 지내고 있다. 2026.4.3 ⓒ 뉴스1 오미란 기자

오전 10시 위령광장에서는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제주특별자치도가 주관하는 '제78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다. 올해 추념식은 지난해 제주4·3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처음 맞는 추념일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4·3은 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절 기념식 직후 벌어진 가두시위에서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희생당한 사건이 도화선이 돼, 무장 봉기가 벌어진 1948년 4월 3일부터 한라산 금족(禁足)지역이 전면 개방된 1954년 9월 21일까지 약 7년 7개월간 무장대와 토벌대 간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최대 3만 명(정부 추정)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정부가 2003년에 발간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4·3에 대해 "제주도의 특수한 여건과 3·1절 발포사건 이후 비롯된 경찰·서북청년단과 제주도민 간의 갈등, 그로 인해 일어난 긴장 상황을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 투쟁과 접목해 일으킨 사건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기술한다.

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에서 4·3 희생자 유족들이 제를 지내고 있다. 2026.4.3 ⓒ 뉴스1 오미란 기자

mro122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