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억 좇은 2년의 긴 여정…종착지는 감옥[사건의 재구성]
"2500만 달러 나누자" 달콤한 제안에 욕심…국제 마약조직 운반책 전락
"필로폰 있는 줄 몰라 로맨스 스캠 피해" 주장…1심 3년6개월 불복 항소
- 강승남 기자
(제주=뉴스1) 강승남 기자 = "2500만 달러를 나누자"는 달콤한 말에 속아 욕심을 부린 대가는 '범죄자'라는 꼬리표였다.
2022년 인테리어 관련 업무에 종사하던 60대 A 씨에게 어느 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시리아에 파병된 '미국 간호사'라며 소개하는 B 씨가 "한국인과 알고 지내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이후 둘은 SNS와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A 씨는 B 씨를 연인으로 생각하게 됐다.
2023년 2월, B 씨는 A 씨에게 C 씨를 소개했다. C 씨는 "미국에서 B 씨에게 나오는 2500만 달러가 있는데, 이를 오산 공군기지로 운반하는 경비 280만 원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A 씨는 비용을 이체했지만 C 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B 씨는 또 "2500만 달러를 6대 4로 나누자"고 제안했다. 40%면 약 140억 원에 달하는 큰돈이었다.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C 씨가 다시 운반 비용 400만 원을 요구하자 관계가 틀어졌다.
그러자 B 씨는 영국의 한 은행 송금 담당자라는 D 씨를 소개했다. A 씨는 2023년 8월 B 씨의 돈을 이체하기 위한 경비 명목으로 400만 원까지 송금했지만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후 또 다른 은행 전무라는 E 씨가 A 씨에게 "이체가 막힌 상황을 알고 있다"고 연락을 보냈고, B 씨는 "E 씨를 잘 알고 있다며 관련 일을 진행하라"고 했다.
E 씨는 2024년 여름 자신을 대신할 대리인 F 씨를 소개했다. A 씨가 국제 마약 범죄조직의 운반책이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F 씨는 "2500만 달러를 지급받으려면 관련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며 해외 출국을 요구했고, "현지 관련자에게 선물을 해야 한다"며 가방 운반을 지시했다.
A 씨는 2024년 8월 라오스에서 가방 1개를, 같은 해 12월 마카오에서 2개를, 2025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4개를 전달했다. 2024년 12월 캐나다로 향했다가 입국을 거부당했다. 캐나다 당국은 "공짜 여행을 빌미로 한 입국은 대부분 사기"라며 돌아가라 했다.
2025년 3월 15일 A 씨는 사우디에서 귀국 후 F 씨에게 "300만 달러를 보냈느냐"고 문의했다. 그러자 F 씨는 "마지막"이라며 캄보디아에서 서류와 선물을 받아 국내 모 은행 제주지점 관계자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의심을 드러내는 A 씨에게 F 씨는 "은행에는 연락하지 말라. 2500만 달러의 40%를 받을 마지막 기회"라며 재촉했다.
A 씨는 2025년 4월 11일 캄보디아로 출국했고, 4월 16일 중국 상하이를 거쳐 제주국제공항에 입국하던 중 체포됐다. 그가 가져온 여행 가방에는 필로폰 2.892㎏이 들어 있었다.
A 씨는 법정에서 "2500만 달러를 나눠 갖자는 제안을 받고 가방을 운반한 것은 사실이나 그 안에 필로폰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로맨스 스캠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돈에 대한 욕심으로 의심하면서도 이 사건 캄보디아 여정을 수락했다"며 "가방 안에 필로폰이 들어 있음을 인식했거나, 적어도 마약류가 들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운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검찰과 피고인 모두 항소했으며, 2심 선고 공판은 오는 12월 24일 예정돼 있다.
ks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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