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게 1통역사'…외국인관광객 핫플된 전통시장의 새바람

[디지털 시대, 소상공인이 사는법]④ "매출에도 긍정 영향"
"다국어 큐알 메뉴판, 언어소통 물론 맵기 등 음식 정보도"

편집자주 ...지역 소상공인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영업과 마케팅 전반의 디지털 전환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뉴스1제주본부는 5차례에 걸쳐 디지털 전환에 도전한 상인들과 행정당국의 지원 정책 등을 소개한다.

제주 민속오일시장에 설치된 다국어 메뉴 큐알/뉴스1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제주관광공사가 올해 초 발표한 '2024년 제주도 방문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쇼핑방소별 이용률(중복응답)은 전통시장은 시내 상점가(70.1%)에 이어서 40.3%로 2위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9%p 높은 수치다.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처럼 획일화된 공간과 달리 전통시장은 지역의 생활문화와 특색을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들에게 인기 방문지로 떠올랐다.

특히 전통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서민 냄새가 풀풀 나는 다양한 향토음식은 시장 탐방의 묘미다.

이처럼 외국인 방문객이 전통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상인들과 외국인들간 소통 문제는 늘 발목을 잡아 왔다.

외국인 관광객이 여행 중 불만족 1위가 '언어소통 불편'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연간 250만명이 찾는 제주시 민속오일시장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박근형 오일장 상인회장은 "오일장을 찾는 손님 중 절반이 관광객이고, 그 안에서 외국인 비율도 상당하다"며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주문할 때 손짓발짓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오일장에 불어온 새로운 변화

올해 봄,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오일장에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제주도가 지난 3~5월 오일장 식당가에 '다국어 큐알(QR)코드 메뉴판'을 설치한 것이다.

다국어 메뉴판은 영어, 중국어(간체‧번체), 일본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 5개 언어로 메뉴를 확인할 수 있다.

관광객들은 점포에 설치된 큐알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자국어로 번역된 메뉴를 바로 볼 수 있다.

다국어 메뉴판은 단순한 '전자 메뉴판'이 아니라 '메뉴 지식 정보 데이터'라 할만하다.

우선 음식명을 그대로 직역하는 게 아니라 매장에서 식재료와 조리법을 확인해 전문 번역사가 알맞게 번역했다.

예를 들어 '육개장'의 공식 번역은 'Spicy Beef Soup'이지만 소고기가 들어가지 않고 담백한 맛이 특징인 제주의 고사리 육개장에는 적합하지 않은 이름이다.

그래서 다국어 메뉴판에서는 '제주산 등뼈로 육수를 우려내 고사리를 갈아 넣고 푹 끓인 제주식 육개장'이라는 의미로 'Jeju-style pork bone soup simmered in pork backbone broth with ground bracken'으로 번역했다.

만약 잘못된 번역이나 메뉴 변경이 있더라도 펜으로 보기 싫게 쓱쓱 긋고 덧쓰던 과가 방식과 달리 전자식이어서 즉시 수정할 수 있다.

또한 사진은 물론 식재료와 알레르기 유발 정보 등도 제공해 외국인의 선택 폭도 넓혔다.

'한국의 매운맛'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을 위한 맵기 단계 표시도 호응을 얻고 있다.

맵기 단계를 고추 아이콘으로 0~5단계로 표시해 고객이 자신에게 맞는 음식을 고를 수 있게 됐다.

다국어 메뉴 큐알을 촬영하면 해당 음식의 가격을 비롯해 맵기, 주재료 등의 정보가 제공된다/뉴스1

이뿐만이 아니다.

식당 입구에 설치된 큐알 코드를 통해 시장 맛집 지도와 매장 위치도 알 수 있어 소비자들이 식당가에서 서성이는 시간을 줄여준다.

상인 입장에서 메뉴별 조회수 통계를 통해 외국인이 선호하는 음식을 확인해 마케팅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

오일장의 변화는 상인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건의로 이뤄졌다는 데서 더 의미가 있다.

오일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정성부 씨는 오영훈 도지사와의 상인 간담회에서 외국인 소통 문제를 건의해 다국어 메뉴판 도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정 씨는 "동남아와 중국, 미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관광객이 시장 식당을 찾아오는데 손님들은 음식 주문하는 게 어렵고 상인들은 상인들대로 고객과 원활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아 불편했다"고 했다.

그는 "다국어 메뉴판 설치 이후에는 고객들이 알아서 척척 주문을 해주니 음식이 잘못 나가지는 않을까, 반대로 내가 제대로 주문한 게 맞을까 고객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며 "매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어 상인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고 했다.

박근형 회장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와서 좋지만 한편으로는 소통이 어려워 불편했는데 우리 시장에 전용 통역사가 생긴 것 같아 너무 좋다"며 "다국어 메뉴판을 계기로 외국관광객은 물론 도민과 내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 오일장으로 거듭나고 싶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kd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