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록해서 참 좋네요"…힐링 트렌드 따라 확 변신한 이 제주어
[제주어 가게로 보는 제주] ③ 오소록
으슥하다→아늑하다…"자연이 치유공간으로 인식되며 뜻 확장"
- 오미란 기자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지난 6일 해질녘에 찾은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는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길에는 듣기 좋은 새소리가 계속 맴돌았고, 내딛는 걸음 사이사이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도 스쳤다.
알록달록 무지개빛 옷을 입은 더럭초등학교와 제주에서 가장 큰 연꽃 자생지인 연화지를 눈에 담으며 가다 보니 커다란 나무가 반기는 한 돌담길이 나왔다. 마치 검은 물결이 굽이치는 듯한 이 길을 따라 걸은지 3분쯤 지났을까. 길 맨 끝 모퉁이에서 돌담과 나무로 둘러싸인 비밀스러운 집을 만났다.
펜션 '오소록'이다.
김효숙 씨(54)가 2020년 9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이 펜션은 이 지역 토박이인 남편 김형석 씨(57)가 가족과 평생 산 구옥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하루 한 팀만 오롯이 묵을 수 있는 독채 숙소로,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채 야외 족욕 등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꾸민 게 인상적인 곳이다.
이름은 '아늑하다'라는 뜻의 제주어 '오소록ᄒᆞ다'에서 따 왔다. 효숙 씨는 "도민인 저는 잘 못 느꼈는데 제가 평소에 저희 집을 소개하면서 '오소록헹 좋지 아녀(아늑해서 좋지 않아)?'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고 웃으며 "육지 사는 한 지인이 발음도, 뜻도 예쁘다고 추천해 '오소록'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김 씨 부부는 펜션 운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골목 중에 골목에 누가 올까'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제 그 말은 옛말이 됐다.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자연 속에서 '힐링'하려는 이들이 많이 찾고 있어서다. 실제 이날 펜션 밖으로 새어 나오는 중국인 가족 투숙객들의 웃음소리는 부부를 더없이 흐뭇하게 했다.
형석 씨는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했는데 주로 가족 단위 손님들이 길게 머무르고, '아늑하다'는 후기들도 많이 있어서 정말 뿌듯하다"며 "지금은 틈틈이 아내를 돕고 있지만 퇴직하면 저도 이런 곳에서 '오소록 2'를 운영해 보고 싶다"고 미소지었다.
제주어 '오소록ᄒᆞ다(오스록ᄒᆞ다·오시록ᄒᆞ다 통용)'는 제주에만 있는 표현으로, 당초 '구석지고 으슥하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다.
'오소록ᄒᆞᆫ 디 꿩ᄃᆞᆨ새기 난다'라는 옛 제주 속담이 대표적인 예다. 그대로 풀이하면 '으슥한 곳에 꿩이 알을 낳는다'는 말인데, 겉으로는 조신해 보이지만 그 속은 엉큼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잘 알려진 속담인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와 비슷한 뜻이다.
요즘은 다르다. 펜션 '오소록'이 그렇듯 '구석지면서도 아늑하다'는 긍정적인 뜻으로 주로 쓰인다.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어음리,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위미리,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등 주로 도심 외곽지에 '오소록'이라는 이름의 가게가 잇따라 문을 열고 있는 것이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 준다. 의귀리의 경우 '오소록'을 봄꽃 축제 이름으로도 쓰고 있다.
2023년 2월에 발간된 '20세기 제주말 큰사전(저자 송상조)'은 실제로 '오소록ᄒᆞ다'를 '주변이 알맞게 감싸지고 깊숙해 드러나지 않으면서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 있다' 또는 '사람의 태도가 조용하고 은근하다'고 풀이하고 있다.
방언학자인 김순자 박사(전 제주학연구센터장)는 "우리 사회가 자연을 치유의 공간으로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오소록ᄒᆞ다'는 본래의 의미를 넘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 의미가 자연스럽게 확장돼 쓰이고 있다"며 "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살아 있는 언어인 방언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mro12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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