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에 살아남은 이 '점(·)'은 뭐라고 발음하나요?'

[제주어 가게로 보는 제주]①'ᄀᆞ래콩물'
'맷돌'의 제주어…"아래아 특징 잘 살아있어"

편집자주 ...[편집자주] 뉴스1은 도내 상점 간판과 상호를 통해 제주어의 의미를 짚어보고, 제주어의 가치와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재조명하는 기획을 매주 1회 12차례 보도한다. 이번 기획기사와 기사에 쓰인 제주어 상호는 뉴스1 제주본부 제주어 선정위원(허영선 시인, 김순자 전 제주학연구센터장, 배영환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장, 김미진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들의 심사를 받았다.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콩 음식점 ‘ᄀᆞ래콩물’/뉴스1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이여~허 이여어 이여도 어떤 사름 팔제 좋앙 고대광실 높은 집이 영웅호걸 시경 사는고 설룬 어멍 날 날 적에 요 ᄀᆞ래 ᄀᆞᆯ랜 날 낫던고(이여~허 이여어 이여도 어떤 사람은 팔자가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에 영웅호걸 시켜서 사는가 서러운 어머니 나를 날 적에 요 맷돌 갈라고 나를 낳았던가).” -ᄀᆞ래ᄀᆞ는소리(맷돌 가는 소리) 中-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콩 음식점 ‘ᄀᆞ래콩물’은 제주인의 먹거리는 물론 제주 여성들의 삶과 제주의 돌 문화도 그려볼 수 있는 곳이다.

맷돌이라는 뜻의 ‘ᄀᆞ래(ᄀᆞ레)’는 '갈다'의 제주어 'ᄀᆞᆯ다'의 어근 ‘ᄀᆞᆯ’에 어미 ‘애(에)’가 결합해 만들어진 어휘다. 올해로 14년째 운영 중인 'ᄀᆞ래콩물'은 순두부와 콩국수 등 콩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이다. 맷돌로 직접 콩을 갈아 만든 재료 본연의 맛과 영양소를 최대한 살린 음식으로 유명하다.

음식점 상호를 '맷돌' 대신 'ᄀᆞ래'라는 제주어를 사용해 이색적이면서도 향토적인 느낌을 잘 보여주는 상호로 평가받았다.

고기 섭취가 쉽지 않았던 시절에 콩은 '마른 밭의 소고기'라 불릴 만큼 단백질의 주요 공급원이었다. 제주는 된장은 물론이고, 생콩을 갈아 겨울철엔 콩국이나 콩죽을 쑤어 먹는 등 콩 음식이 많다.

콩국은 타 지역에서는 ‘콩국수’처럼 여름철 음식을 떠올리지만 제주에서는 겨울철 별미다. 옛 제주사람은 월동 준비로 늦가을에 콩을 수확해 된장을 만들었는데 이때 남은 콩으로 날콩을 간 콩가루와 무나 배추 등을 넣어 콩국을 끓여먹었다.

‘ᄀᆞ래’는 제주어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인 아래아가 살아있는 어휘다. ‘아래아(ㆍ)’는 한글창제 당시의 모음으로 제주에는 ‘ᄀᆞ래, ᄆᆞᆯ, ᄀᆞ뭄’처럼 아직도 나이든 어른들에게서는 들을 수 있다. 국어학자는 물론 방언학자, 세계 각국의 언어학자들이 소멸 위기의 제주어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ᄀᆞ래'에도 이 특징이 잘 드러나 있어서다.

방언학자 김순자 박사(전 제주학연구센터장)는 “제주어는 섬이라는 특수한 언어 환경에 맞춰 발전해 왔다. 제주어에는 아래아 등 중세 국어가 많이 남아 있는 문화유산"이라며 "ᄀᆞ래라는 어휘 하나를 봐도 국어사적으로나 방언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국어의 자모는 40자이지만 제주어 표기법에는 2개가 더 많다. 아래아(·)와 쌍아래아(··)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아래아는 오(ㅗ)와 비슷한 발음으로 읽지만, 제주어 전문가들이 아래아 음성을 분석한 결과, '오'와는 확연히 구분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는 '아래아'를 '아(ㅏ)'로 읽으면서 기형적인 제주어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ᄆᆞᆷ국’을 ‘맘국’, ‘ᄀᆞ래’를 ‘가래’처럼 제주에선 전형 사용하지 않은 어휘를 만들어낸 것이다.

‘ᄀᆞ래’의 동사형인 '골다'의 표준어가 '갈다'인 것도 그렇다.

지금은 제주학연구센터가 수정을 요청해 바뀌었지만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 국어사전에는 ᄆᆞᆷ국(몸국)과 ᄂᆞᆷ삐(놈삐: 무의 제주어)를 ‘맘국’과 ‘남삐’로 표기한 적이 있다. 과자 이름 ‘ᄎᆞᆷ크래커’를 ‘촘크래커’로 읽으면 제주 사람, ‘참크래커’로 읽으면 육지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맷돌과 제주

'돌의 고장' 제주에서 돌은 땅을 일구는 농기구이자 그릇, 놀이기구, 경계선(돌담), 신앙 등으로 쓰임이 다양했다.

‘ᄀᆞ래’는 돌을 이용한 기구 중 곡식을 도정하는 도구다. 고정된 ‘알돌’에 ‘웃돌’을 올려놓고 '맷손'이라는 손잡이를 회전시켜 곡식을 갈았다. 제주에서는 ‘알돌’을 ‘알착’, ‘웃돌’은 ‘웃착’이라 부른다.

곡식을 쪼개거나 가루로 쓿을 때는‘정ᄀᆞ래(맷돌)’를 이용하고, 물기가 있는 곡물을 빻을 때는 ‘풀ᄀᆞ래(풀매)’를 이용한다. 쓰임에 따라서 ‘ᄀᆞ래’의 모양도 달리 만든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곡식을 찧거나 쓿는 힘든 일은 대부분 여성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제주에는 방앗돌을 굴리거나 방아 찧기, 맷돌을 돌리는 노동의 고통을 노래로 승화한 노동요의 비중이 크다.

국립국악원에서 소개된 앞의 ‘ᄀᆞ래ᄀᆞ는소리’를 보면, 노랫말에서 시집살이의 애환과 남편, 첩, 시부모 등과의 갈등을 비롯해 생활상의 고초와 경제적인 어려움, 여자로 태어난 것의 슬픔 등을 총체적으로 표현했다.

김 박사는 “궁핍했던 삶을 살았던 우리네 할머니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에 파묻혀 살았다. 낮에는 밭일을 하고 밤에는 ᄀᆞ래로 미리 보리나 쌀을 찧어야 다음날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다”며 “ᄀᆞ래ᄀᆞ는소리는 그런 삶속에서 태어난 문화이며, ‘ᄀᆞ래’는 제주 여성의 부지런함과 억척스러움을 보여주는 도구 중 하나”라고 했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kd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