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핏줄 찾아 나선 4·3유족들

희생자 추념일 맞아 4·3평화공원서 채혈 잇따라
발굴 유해 419구 중 272구는 여전히 '신원 미상'

4·3 희생자 유족 홍창흥 씨(70·서귀포시 토평동)가 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에 마련된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 현장 체혈' 부스에서 채혈하고 있다.2025.4.3./뉴스1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8시 40분 제주 4·3 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4·3 행방불명 희생자 4030명의 표석이 모여 있는 이곳을 유족 홍창홍 씨(70·서귀포시 토평동)가 찾았다.

그는 할아버지인 고(故) 홍숙 씨 표석 앞에서 간단히 제사를 지낸 뒤 근처에 있던 한 부스로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 현장 채혈' 부스였다.

"안녕하세요" "혹시 채혈하셨어요"

홍 씨를 먼저 반긴 건 제주4·3평화재단 직원들의 살가운 인사였다. 미소로 화답한 그는 안내에 따라 유전자 검사 동의서를 작성해 제출한 뒤 탁자 위에 조심스레 왼팔을 올렸다.

간호사는 홍 씨 팔에 주사기 바늘을 넣어 혈액 4㏄를 뽑았다. 이 혈액은 작은 용기 2개에 2㏄씩 나눠 담겼다. 혈액 용기엔 홍 씨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스티커가 붙여졌다.

홍 씨 혈액은 이날 채취된 다른 유족 혈액과 함께 다음 주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로 옮겨진다. 일찍이 유해가 발굴됐음에도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4·3 희생자들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해 가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홍 씨는 "할아버지는 4·3 때 밭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행방불명됐다"며 "10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에 따르면 목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는데 6·25 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행방불명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4·3 희생자 유족 홍창흥 씨(70·서귀포시 토평동)의 혈액이 담긴 혈액용기들.2025.4.3./뉴스1

그는 "일찍이 작은아버지가 채혈에 참여했는데 기다리던 (신원 확인) 소식이 들리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늘 나도 채혈에 참여하게 됐다.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두 손을 모았다.

이날 채혈에 참여한 다른 4·3 희생자 유족 김미열 씨(61)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큰할아버지 고 김문경 씨의 행방을 찾는 김 씨는 "단 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뭐든 못하겠느냐. 우리 가족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4·3 평화재단에 따르면 '4·3 희생자 유해 발굴·유전자 감식 사업'이 시작된 지난 2006년부터 현재까지 발굴된 희생자 유해는 총 419구(도내 417구·도외 2구)에 달한다.

'혹시 내 가족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같은 기간 채혈에 나선 유족은 2440명. 최근 5년간 추이를 보면 2020년 153명, 2021년 159명, 2022년 239명, 2023년 283명, 작년 281명으로 매년 조금씩 느는 추세다. 올 들어서도 32명이 채혈에 참여했다.

그러나 신원이 확인된 유해 수는 전체의 35.1% 수준인 147구뿐이다. 4·3평화공원 봉안관에 있는 나머지 유해 272구엔 여전히 이름이 아닌 영문·숫자로 조합된 구분기호만 붙여져 있다. 이 때문에 4·3 평화재단에선 희생자 유족들에게 채혈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지속 호소하고 있다.

채혈에 참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신분증만 갖고 평일 오후 1~4시 제주한라병원(신관 3층) 또는 평일 오전 9시~오후 5시 서귀포열린병원(2층)을 방문하면 된다.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는 "유족 채혈엔 희생자 직계·방계 8촌까지 누구나 언제든 참여할 수 있다"며 유족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mro122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