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20일 앞…100세 황도숙 할머니의 꿈

5일 황도숙 할머니(100·제주시 외도동)가 자신의 자택에서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1951년 1.4후퇴 때 제주에 내려온 황 할머니는 지난 1983년부터 십수년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지만 번번히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대한적십자사는 황 할머니처럼 연세가 많고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의 가정을 매년 이맘 때즘 방문해 위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 News1 이상민 기자

“이젠 안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도 희망이 없으니 아예 생각을 안해요. 이젠 안 보고 싶어….”

황도숙 할머니(100·제주시 외도동)는 북녘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달래곤 했다. 이번에도 못 만나면 어쩌나. 그래서 또 다시 실망할까봐, ‘보고 싶다’는 말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황 할머니다.

5일 오전 대한적십자사는 기자들과 함께 황 할머니 댁을 찾았다. 대한적십자사는 매년 이맘 때즘 황 할머니처럼 연세가 많고 오랜 기간 이북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로 상수(100세)를 맞은 황 할머니의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시 해방동이다.

황 할머니는 이곳에서 아버지 황윤보씨와 어머니 김계순씨, 동생 황충군(90)씨, 황운산(85)씨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황 할머니는 지금은 고인이 된 남편 박창훈씨(나이 미상)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만주로 이사왔다. 당시 남편의 직업은 경찰이었다.

황 할머니가 제주에 뿌리를 내린 건 1950~1951년 1.4후퇴 때다. 외도파출소장으로 발령 받은 남편의 뒤를 따라 피난민들과 섞여 제주에 내려왔다.

북녘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지만 제주에 내려올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남과 북이 둘로 갈라질지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황 할머니의 두 남동생은 1.4후퇴 때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전쟁 난리통에 고향으로 갔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조차 확인이 안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제주로 내려온 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 박창훈씨(1950년대 말로 추정)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때부터 황 할머니는 제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홀로 자식들을 힘겹게 키웠다. 어느덧 자식들이 장성해 손주까지 봤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가실줄 몰랐다.

함경북도 청진시가 고향인 황도숙 할머니(100·제주시 외도동)가 5일 자택을 찾아온 대한적십자 관계자들에게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1951년 1.4후퇴 때 제주에 내려온 황 할머니는 지난 1983년부터 십수년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지만 번번히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대한적십자사는 황 할머니처럼 연세가 많고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의 가정을 매년 이맘 때즘 방문해 위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 News1 이상민 기자

그러다 들려온 이산가족 상봉 소식은 황 할머니에겐 실낱 같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번번이 황 할머니를 외면했다. 황 할머니는 1983년부터 십수년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지만 단 한번도 상봉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이날 더 이상 가족들을 보고 싶지 않다던 황 할머니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외손녀 이은희(40)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산가족 프로그램을 할머니와 함께 봤지만 할머니는 슬픈 내색을 잘 안하셨다”며 “가족들을 찾을까 하는 괜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실망하게 되실까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에는 황 할머니처럼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이산가족이 576명이다.

황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 남과 북은 오는 16일 이산가족 상봉 최종명단을 교환한다. 이산가족상봉행사는 오는 25일로 예정돼있다.

lees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