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20일 앞…100세 황도숙 할머니의 꿈
“이젠 안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도 희망이 없으니 아예 생각을 안해요. 이젠 안 보고 싶어….”
황도숙 할머니(100·제주시 외도동)는 북녘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달래곤 했다. 이번에도 못 만나면 어쩌나. 그래서 또 다시 실망할까봐, ‘보고 싶다’는 말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황 할머니다.
5일 오전 대한적십자사는 기자들과 함께 황 할머니 댁을 찾았다. 대한적십자사는 매년 이맘 때즘 황 할머니처럼 연세가 많고 오랜 기간 이북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로 상수(100세)를 맞은 황 할머니의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시 해방동이다.
황 할머니는 이곳에서 아버지 황윤보씨와 어머니 김계순씨, 동생 황충군(90)씨, 황운산(85)씨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황 할머니는 지금은 고인이 된 남편 박창훈씨(나이 미상)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만주로 이사왔다. 당시 남편의 직업은 경찰이었다.
황 할머니가 제주에 뿌리를 내린 건 1950~1951년 1.4후퇴 때다. 외도파출소장으로 발령 받은 남편의 뒤를 따라 피난민들과 섞여 제주에 내려왔다.
북녘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지만 제주에 내려올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남과 북이 둘로 갈라질지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황 할머니의 두 남동생은 1.4후퇴 때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전쟁 난리통에 고향으로 갔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조차 확인이 안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제주로 내려온 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 박창훈씨(1950년대 말로 추정)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때부터 황 할머니는 제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홀로 자식들을 힘겹게 키웠다. 어느덧 자식들이 장성해 손주까지 봤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가실줄 몰랐다.
그러다 들려온 이산가족 상봉 소식은 황 할머니에겐 실낱 같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번번이 황 할머니를 외면했다. 황 할머니는 1983년부터 십수년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지만 단 한번도 상봉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이날 더 이상 가족들을 보고 싶지 않다던 황 할머니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외손녀 이은희(40)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산가족 프로그램을 할머니와 함께 봤지만 할머니는 슬픈 내색을 잘 안하셨다”며 “가족들을 찾을까 하는 괜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실망하게 되실까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에는 황 할머니처럼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이산가족이 576명이다.
황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 남과 북은 오는 16일 이산가족 상봉 최종명단을 교환한다. 이산가족상봉행사는 오는 25일로 예정돼있다.
lees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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