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 의존하던 와셔, 이젠 역수출…세인아이엔디의 38년 생존법
[로컬 히든챔피언] 38년 뿌리산업 지킨 인천 제조기업
"대나무처럼 버티고 양손잡이 혁신으로 미래 준비"
- 이시명 기자, 유준상 기자
(인천=뉴스1) 이시명 유준상 기자
완성된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와셔 등 체결 부품은 수만 개에 이릅니다. 이 작은 연결 부품들이 차량 전체를 완성하듯, 한국 제조업도 하나의 대기업 뒤에 수많은 중소 제조업체가 버티고 있어요.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에서 만난 오원현 ㈜세인아이엔디 대표는 제조업을 '연결의 산업'이라고 했다. 자동차와 가전, 전자기기가 아무리 고도화돼도 결국 부품과 부품을 잇는 작은 소재·부품이 완성품의 품질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1988년 서울 성수동에서 출발한 세인아이엔디는 자동차용 와셔를 주력으로 생산해온 뿌리 제조기업이다. 2000년대 초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로 이전한 뒤 국내 완성차 공급망의 한 축을 지켜왔다. 규모가 크거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회사는 아니지만, 이 회사가 만드는 작은 부품은 제조업 현장의 가장 안쪽에서 완성품을 떠받치고 있다.
오 대표는 2011년 현대자동차 연구소를 떠나 가업에 합류했다. 2세 경영인으로서 그에게 승계는 자리를 물려받는 일이 아니라, 오래된 제조업이 새 산업 환경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일이었다. 그는 "아버지 세대가 만든 기반 위에 시대 변화에 맞는 혁신을 더해야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인아이엔디는 현재 일본, 미국, 독일, 폴란드, 튀르키예, 멕시코 등으로 제품을 수출한다. 지난해 수출 100만 달러를 돌파했고 올해 목표는 200만 달러다. 특히 일본은 전체 수출액의 60~70%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오 대표에게 일본 수출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창업 초기만 해도 와셔는 일본산 의존도가 높았지만, 이제는 되레 일본 시장에 역수출하는 단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일본 시장은 품질 기준이 까다롭습니다. 그 시장을 뚫었다는 것 자체가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예전에는 일본 제품을 따라가야 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일본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조업을 둘러싼 환경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미국발 관세 장벽, 원자재 가격 상승, 전쟁과 공급망 불안은 중소 제조업체에 곧바로 압박으로 돌아온다. 대기업은 생산기지를 옮기거나 글로벌 공급망을 조정할 여력이 있지만, 2·3차 협력업체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오 대표는 "철강 제품에 대한 관세는 단순히 비용이 늘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현지로 생산 체제를 옮기라는 압박의 메시지"라며 "대기업은 대응할 여력이 있지만 2·3차 협력업체가 생산기지를 옮기는 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의 추격도 부담이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완성차가 세계 시장 점유율을 넓히면, 국내 완성차 업체의 원가 절감 압박은 협력업체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오 대표는 예전 방식의 절감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이제는 일선 공장에서 장갑을 아껴 쓰는 수준의 원가 절감으로 버틸 수 없다"며 "제조 방식 자체를 바꾸는 수준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인아이엔디가 택한 방향은 '양손잡이 전략'이다. 한 손으로는 기존 와셔 사업을 지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전기차 배터리 결합 부품인 버스바(busbar)와 의료 수술기기 부품 등 미래 산업으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오 대표는 "왼손으로는 가업의 뿌리를 지키고, 오른손으로는 미래 먹거리를 준비해야 한다"며 "제조업도 자동화, 로봇, 스마트팩토리 기반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기업 경영을 설명할 때 자주 꺼내는 비유는 대나무다. 대나무가 높게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마디가 있기 때문이고, 기업도 위기를 지날 때마다 새로운 마디가 생긴다는 것이다.
세인아이엔디도 창업 이후 화재, 산업재해, 법적 분쟁, 공급망 위기 등 적지 않은 고비를 넘겼다. 오 대표는 그 시간을 단순한 시련이 아니라 회사를 단단하게 만든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대나무가 높이 설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매듭 때문입니다. 기업도 위기와 고통의 시간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마디가 생기고, 그 마디가 회사를 내실 있게 만듭니다."
오 대표는 정부와 지자체의 제조업 정책도 현장에 더 가까워져야 한다고 했다. 단순 컨설팅이나 단기 지원보다 산업단지 조성, 설비 투자 지원, 장기적 제조업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중소기업은 혁신 의지가 있어도 자금과 인프라가 부족하면 실행이 어렵다"면서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공격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 대표의 고민은 세인아이엔디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산업화 시대를 연 창업 1세대가 제조업의 기반을 만들었다면, 이제 2세대 경영인은 그 기반 위에서 생존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서다.
위기는 결국 변화를 강제합니다. 그 변화가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세계 산업 지형이 빠르게 재편되는 지금, 한국 제조업도 과거와 미래를 함께 쥐는 혁신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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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방에는 서울보다 덜 알려졌지만 묵묵히 기술을 키우고 시장을 넓히며 산업 현장을 지탱해온 기업이 많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아도 일자리와 투자,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지역 경제의 체온을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뉴스1은 [로컬 히든챔피언] 코너를 통해 각 지역 산업 현장에서 경쟁력을 쌓아온 기업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