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차 영차, 책방 이전작전"…인천 배다리서 시민 150명 '인간띠 이사'
[르포] 나비날다 책방 이사 프로젝트 '책나르샤'
돈 대신 '관계'로 완성한 이사…배다리 골목의 실험
- 박소영 기자
(인천=뉴스1) 박소영 기자 = "영차, 영차. 조금만 더 힘내세요!"
26일 오후 인천 동구 배다리 헌책방거리. 평소 같으면 한산했을 평일 오후, 골목을 따라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대학생부터 주부, 동네 상인까지 시민 150여 명이 '인간띠'를 만들어 책을 나르고 있었다. 이날 시민들이 나선 이유는 단 하나. 독립서점 '나비날다 책방'의 이사를 돕기 프로젝트 '책나르샤'를 위해서다.
나비날다 책방은 배다리 옛 동성한의원 건물에서 약 280m 떨어진 '충인쌀상회' 건물로 자리를 옮긴다. 흔한 화물차 대신 선택한 방법은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책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약 1만 권의 책이 골목을 따라 차례로 이동했다. 책을 건네는 손길은 분주했지만, 현장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책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나오면 "떨어뜨리면 사야 합니다"라는 외침이, 주변에서는 "제가 살게요", "좋은 책 걸리셨네요"며 농담이 이어졌다. 낯선 사람들끼리도 금세 말을 트며 책을 주고받았다. 지나가던 시민은 "연탄 나르는 건 봤어도 책 나르는 것은 처음 본다"며 신기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현장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이사는 처음에는 사람 간 간격이 족히 4~5m가량 벌어져 있었지만, 시작 20분 만에 1~2m로 좁혀졌다. 길게 늘어선 인간띠를 따라 책은 끊임없이 이동했고, 어느새 새 책장의 빈칸이 하나둘 채워졌다.
이지희 씨(53·여)는 "근처에 사는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고 휴가를 내고 왔다"며 "재밌을 것 같아서 친구와 함께 신청했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분위기가 더 좋다"고 말했다.
엄태은·홍서연 씨(24·여)는 "평소 책에 관심이 있고, 나비날다 책방도 자주 다닌다"며 "막상 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들었지만, 나비날다 책방에 이런 책들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수업의 일환으로 참여한 인하대학교 학생들도 있었다. 차서현·안가은 씨(21·여)는 "현장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 신청했는데 규모가 커서 놀랐다"며 "힘들지만 책방이 완성되는 걸 보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배다리에서 오랫동안 문화 활동을 이어온 이들도 함께했다. 정의당 김종호 동구의원은 "사람들이 실제 모일까 걱정이 많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이어지는 걸 보니 뿌듯하다"며 "배다리만의 장점이 잘 드러난 사례"라고 웃었다.
과거 특별한 기억을 떠올리는 이도 있었다. 배다리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76)는 이날 서점을 닫고 이사에 참여했다. 그는 "아벨서점도 1995년 이사할 때 대건고등학교 학생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이사를 도와줬다"며 "벌써 그 학생들이 50대가 되었을 텐데 감회가 새롭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엔 책을 20권씩 묶어 날라서 7시간이 걸렸는데, 지금은 더 많은 사람이 모여 훨씬 빨리 끝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언론보도를 보고 참여했다는 서승열 씨(70·남)는 "제가 어린 시절엔 배다리에 책방이 많았었다"며 "사장님을 잘 모르지만 책을 좋아하다 보니 의미 있는 일 같아 참여했다"고 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책방을 운영하는 권은숙 대표(61)가 책 1만 권을 혼자 옮겨야 한다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단순한 이사를 넘어 '관계'로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실험이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승수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돈이 없어도 관계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나온 아이디어"라며 "해외에서 시민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동네 책방 이사를 도운 사례가 있어 그에 착안해 기획하게 됐다. 인천시민뿐만이 아닌 서울, 판교, 제주도 다양한 곳에서 와주셔 100명 정도를 모집했는데 150명이 모였다"고 말했다.
이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나비날다책방 유리창에 이름이 기록되며, 이후 책방 이용 시 도서 가격의 10% 할인 혜택을 받는다.
imsoyou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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