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나누던 소년, 시민 품는 시의장까지"…정해권 인천시의장
자서전 '정해권, 그리고 나의 고향 인천' 발간
"시민 목소리에 응답하는 게 시의회 존재 이유"
- 박소영 기자
(인천=뉴스1) 박소영 기자 = 정해권 인천시의회 의장이 12월 4일 라마다송도호텔에서 자서전 '정해권, 그리고 나의 고향 인천' 출판기념회를 연다.
정 의장은 지난 20일 시의회 의장실에서 뉴스1과 만나 "이번 책을 통해 정치인의 기록을 넘어 한 인간이 어떻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지켜왔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정 의장은 인천 토박이다. 그는 인현동에서 태어나 동구·미추홀구·연수구까지 도시 변화를 '온몸'으로 겪었다.
정 의장은 1970~80년대 공단 지역이었던 주안동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시 속에서 도시락을 챙겨오지 못한 친구들에게 반찬을 나눠주며 성장했다고 한다. 왕복 2시간이 넘는 통학, 복싱부에서의 단련, 친구들과의 갈등 조정이 오늘의 정치 철학을 만든 뿌리가 됐다는 게 정 의장의 설명이다.
그는 "작은 배려 하나가 친구의 하루를 바꾸고, 그 하루가 결국 사람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며 "힘은 약한 쪽에 기울이고, 판단은 공정하게 하며, 책임은 끝까지 지는 것. 그 원칙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년기의 그는 잦은 실패를 겪었다. MBC 탤런트 공채 3차까지 올랐지만 실수로 기회를 놓쳤고, 첫 직장도 석 달 만에 그만뒀다. 국내외 여러 도시를 떠돌며 방황하던 시기, 그는 도시 행정과 공공 시스템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정 의장을 정치 생활로 이끈 건 해병대와 한국청년회의소(JC) 활동이다. 그는 이 활동들을 바탕으로 1996년 신한국당 인천시당 청년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그의 첫 정치 여정은 길지 않았다. 1997년 당시 한나라당의 대선 패배 이후 무너진 당내 질서와 공천 갈등, 1998년 지방선거 비례대표 낙선 등을 겪으며 그는 2000년 정당 활동을 정리하고 다시 사업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IMF 외환위기'를 마주하면서 하루아침에 부도를 겪었다. 그는 재기를 위해 가족과 함께 태국으로 향했다. 관광가이드 일을 자존심 때문에 망설였던 그를 깨운 건 아내였다. 정 의장은 아내가 보석 가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이에 그는 관광가이드 일을 시작했고, 여행사를 차려 5년 만에 손꼽히는 여행사로 키워냈다. 그는 "쓰러져봐야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보인다"며 "해병대에서 배운 끈기, JC에서 배운 리더십이 태국에서 나를 다시 일으켜세웠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이후 16년 만에 정치의 길로 돌아왔다. JC 선후배·동기들의 변화를 보며 "돈은 늦었지만, 사람과 명예로는 다시 설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2018년 선 뒤 2022년 제9대 인천시의원에 당선됐다.
정 의장이 바라본 지난 3년의 인천은 확실한 성과가 있었다. 지역 총생산(GRDP) 104조 5000억 원 돌파로 전국 2위에 올랐고, 인구 300만 시대를 열었다. 저출생 해법인 '아이(i)-시리즈'도 자리 잡았다. 교통 인프라 확충도 본격화됐다.
정 의장은 인천이 풀어야 할 분명히 숙제를 알고 있다. GTX-B·D·E 노선, 경인고속도로·경인전철 지하화, 인천발 KTX 직결, 인천해사법원 설치, 행정 체제 개편 등 굵직한 과제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정 의장은 "나와 시의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시민 목소리에 응답하는 일"이라며 "응답은 빠르기만 해서도, 화려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 정확해야 하고,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 슬로건인 '내 고장 인천을 사랑합시다'에서 난 '사랑'이라는 동사를 현재형으로 쓴다"며 "인천이라는 이름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삶은 넓다. 그 넓음을 함께 채워 나가 주는 그게 내가 되고 싶은 '인간 정해권'"이라고 말했다.
imsoyoung@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