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대교’ 오명에도 '추락 방지안' 수차례 제안 거절한 국토부 왜?

정부 요지부동에…'드럼통' 등 무른 대책 예산 낭비만

인천대교(좌)와 서울 마포대교(우). 마포대교 난간 위에 와이어가 설치돼 있는 모습이다. (인천·서울시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인천=뉴스1) 유준상 기자 = 투신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인천대교에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 난관을 국비 80억 원을 들여 설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2009년 개통 이래 대응 시간이 16년이나 있었음에도 소관 부처가 이제서야 움직이는 건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는 게 현장의 분위기다.

28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대교에 120억 원 규모 '추가 난간' 설치, 70억 원 규모 '그물망' 설치 등 국비를 활용한 추락 방지안이 수 년에 걸쳐 여러 번 제안됐으나 국토부가 모두 거절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작년까지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이었던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의원은 "피해를 막고자 안전 시설 설치를 위한 예산 증액 요청을 여러 차례 했으나 국토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며 "차관을 비롯한 실무자들이 공감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천대교를 소관하는 국토부와 자살 예방대책을 마련하는 보건복지부가 이 문제에 함께 대응하며 예산도 증액 편성하도록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다"고 덧붙였다.

인천대교는 국토부(당시 건설교통부)가 민자 SOC 사업으로 건설을 추진해 2009년 완공한 국가 기간교통망이다. 총괄 격인 국토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지자체나 사업주 입장에서 대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이야기다.

국토부가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지자체인 인천시와 운영사인 인천대교가 나름의 자살 방지 대책을 마련해 왔지만 예산 규모가 턱없이 적은 탓에 실효성을 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앞서 인천대교 측은 2022년 11월 통계상 투신 빈도가 높은 부근 갓길에 4000만원을 들여 1500개의 플라스틱 드럼통을 설치했다. 하지만 2023년 한 해 동안 10명 이상이 숨지고, 갓길이 본래 용도로 활용되지 못해 사고 위험성을 높였다는 지적을 받아 지난달 철거됐다.

대안 없이 방치된 인천대교는 자살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달에만 4명이 차량을 세운 뒤 바다로 뛰어내려 숨지거나 실종됐다. 2009년 개통 이래 현재까지 투신 사고가 89건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인천의 타 대교들은 드론으로 상시 감시하고 있고, 대교 위에서 의심스런 시도의 패턴이 보이면 음성멘트 송출하는 시범사업도 진행 중이다"며 "인천·영종대교의 경우 공항과 가까워 드론 활용이 불가하고 정부 소관이라 예방 활동에 어려운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투신 사고율이 높았지만 안전 난관이 설치된 후 효과를 보고 있는 다리들이 있다. 투신 사고로 악명이 높았던 마포대교는 2016년 서울시가 다리 난간에 와이어와 롤러로 된 안전시설물을 설치한 이후 투신 시도자 수가 2016년 211명, 2017년 163명에서 2018년 155명으로 줄었다. 26.54%나 감소한 것이다.

같은 기간 마포대교와 가까운 한강·양화·서강대교의 자살시도자 수는 83명에서 115명으로 38.5% 증가했다. 마포대교에서 줄어든 만큼 인접교량의 자살시도자 수가 늘어난 셈이다.

국토부가 인천대교 안전 난관 설비 비용으로 80억 원을 명시했지만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지는 관건이다. 국토부의 내년도 본예산은 역대 최대 규모로 지난 8월 이미 편성됐다. 후반기 예결위에서 '대교 안전 시설'을 위한 예산 조정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그렇다고 인천대교를 관리하고 있는 국토부가 대교 운영사인 인천대교와 인천시에 비용 부담을 전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국토부 계획이 정상적으로 추진돼도 빨라야 내년 하반기에나 구조물 설치가 이뤄질 전망이다.

인천 중구의회 윤효화 의원은 "잘못된 선택은 순간적 충동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출렁거리는 그물만 쳐도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인데 그간 너무 방치돼 왔다"며 "국토부, 지자체, 사업자가 차일피일 책임을 미루며 방관한 게 인천대교의 현 사태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yoojoonsa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