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낮과 두 번의 밤을 뛰었다…170㎞ '장수 백마일' 46시간 사투

[르포] 장수트레일레이스 100마일(JTR Miler) 완주기
스위퍼에 쫓기고 물 동냥까지…컷오프 17분 전 결승선 통과

2026 장수트레일레이스 100마일(JTR Miler)에 출전한 주자들이 출발에 앞서 단체 기념촬영하는 모습. (락앤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9.18/뉴스1

(장수=뉴스1) 이상휼 기자 = 세 번의 낮과 두 번의 밤, 46시간 동안 약 170㎞의 산길을 뛰었다. 후반 50㎞는 컷오프와의 사투를 벌였다. 코스 표시물을 수거하면서 등 뒤까지 바짝 쫓아온 스위퍼(코스를 최종 점검하는 스태프)들이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

기자는 지난 18~20일 전북 장수군에서 열린 '2026 장수트레일레이스 Fall with 노스페이스(주최 락앤런)' 100마일(JTR Miler) 코스에 도전해 완주했다.

총 거리 168.6㎞, 누적상승고도 1만 760m에 달하는 '장수 백마일'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장거리·고난도 울트라 트레일레이스로, 작년에 이어 2회째다. 최근 2년 이내 100㎞ 이상 트레일러닝 대회 완주 기록 등이 있는 트레일러너에게만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지난해 이 코스 완주자는 43명이었고 69명이 DNF(중도 포기·Did Not Finish)했다고 한다. 올해는 72명(릴레이 5팀 제외)이 완주했고, 102명이 중도 포기했다.

장수트레일레이스 100마일 코스 및 고도표. (락앤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출발 이후 13곳의 체크포인트(CP·참가자 중간기록 측정 및 보급소)를 거쳤고 '바로 앞 CP까지만 가자'는 생각으로 레이스에 임했다. 장수는 이미 국내 트레일러닝의 주요 무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트레일에서 마주친 주민들은 주자들을 반갑게 맞으며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마지막 CP 직후 신덕산마을에서는 할머니 대여섯 분이 노래하듯 흥겹게 춤추고 박수치며 함성을 질러줘 힘을 짜낼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과 스태프들, 경찰과 군청 관계자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안전을 통제하면서 주자들을 지원했다. 오히려 주자들보다 더 에너지를 쓰는 모습이었다.

장수 일대 산들은 흙이 많은 육산으로 큰 바위들이 많지 않아 달리기 좋았지만 길고 긴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은 이른바 '정신과 시간의 방'처럼 느껴졌다. 80㎞ 지점인 육십령부터 덕유산을 넘는 구간은 난이도의 절정이었다. 설악산·지리산 못지않은 오르막과 거친 바윗길이 이어졌고 빽빽한 조릿대가 온몸을 쳤다.

육십령휴게소 CP에서 나눠준 얼음물을 챙기지 않은 것을 수십 번 후회했다. 정오를 넘긴 땡볕 아래 챙겨간 물 3통은 바닥났고 등산객들에게 "에너지젤 드릴게요. 한 모금만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라며 물 동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생명의 은인 여러 명을 만나 덕유산 구간을 간신히 극복했다.

전북 장수 일대 황금 들판이 펼쳐진 농로길. JTR Miler의 모든 구간을 통틀어 가장 편안하고 힐링되는 주로. 2026.9.19 ⓒ 뉴스1 이상휼 기자

덕유산을 벗어나 장수로 이어지던 농로에서 펼쳐진 광활한 황금 들녘을 보니 넉넉한 지역민들의 품성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인근 농민으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경광봉을 들고 주로를 안내해 줬다. 해질녘 월계마을 CP에서는 유치원생 딸과 엄마가 백마일 주자인 아빠를 응원하고 있었다. 모녀는 다음날까지 거의 모든 CP마다 미리 당도해 아빠(남편)를 응원했고, 그 모습은 마주치는 사람들까지 미소 짓게 했다.

침령산성 구간에서 기자가 찬 시계의 GPX 경로 안내가 돌연 먹통이 됐고, 몇 시간 뒤에는 배터리마저 완전히 방전됐다. 이미 캄캄한 밤중이었고 지도를 볼 수 없게 돼 '야광 마킹'에 의존해 나아갔다. 캄캄한 산중에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하얗게 펄럭이는 표시물은 유령 같았다.

랜턴으로 두리번거리면 그 유령은 높은 곳에도 있다가 낮은 곳으로 옮겨가 있기도 하고 신출귀몰했다. 다가가면 또 멀리 유령(야광 표시물)이 아른거렸다. 구름 한 점 없는 밤, 반달이 보름달처럼 밝게 빛났는데, 하늘 높이 있던 달이 어느덧 나무숲까지 내려와 나무 사이사이로 빛을 내며 앞길을 밝혀주었다.

침령산성으로 접어드는 길에서 보이는 야광 표시물. 주자들은 표시물을 따라 주로를 진행한다. 2026.9.19 ⓒ 뉴스1 이상휼 기자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침령산성 구간에서 생존을 위해 비슷한 주력의 주자와 동반주를 했다. 그는 CP에서 본 '젊은 아빠'였다. 울트라 트트레일런을 하면서안전을 위해 동반주를 선택하는 것도 한 방편이다. 그와 기자는 같은 '딸 바보'였다. 달이 지고 해가 뜰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며 약 50㎞를 함께 달렸다.

가장 힘든 구간을 넘긴 그는 발의 물집이 터져 걷기도 힘겨워했고 "형님 먼저 가세요"라며 손을 흔들었다. 혼자 마지막 CP에 들어온 기자를 본 그의 아내는 "우리 남편은요?"라며 다급하게 물었다. 기자는 "끝까지 싸우고 있어요"라고 답했고, 젊은 엄마는 딸에게 "아빠 곧 올 거야"라고 했다.

그는 결국 결승선까지 약 5㎞를 남겨둔 마지막 CP에서 제한시간보다 3분 늦게 도착해 컷오프됐다. 주로에서 그는 "장수 백마일은 다시 쳐다보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그가 다시 출발선에 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JTR Miler 결승선을 통과한 기자. (락앤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9.20/뉴스1

고도표상 비교적 쉬울 줄 예상했던 마지막 13.4㎞는 끝도 없는 비슷한 오르내리막의 반복이었다. 끝까지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자극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햇살 아래 낮 12시 12분, 컷오프를 17분 남기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소감을 묻는 주최 측 관계자에게 "인터스텔라 체험을 하고 온 듯하다"고 말했다.

"왜 그런 걸 하느냐." 오래 사귄 지인들은 묻지 않지만, 여러 사람한테서 자주 듣는 말이다. 늘 사람을 만나 마치 장거리 트레일러닝처럼 길고 긴말들을 주고받고 끝나지 않을 술자리를 거듭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산길을 뛰고 걸으며 내면에 침잠하기도 하고 지나온 날들을 반성하거나 앞날을 계획하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난관에 맞닥뜨리거나 트레일을 헤쳐 나가는 순간은 유년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중년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도전할 수 있고 어쩌면 해낼 수도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장안산에서 바라본 운해, 논개활공장에 장수트레일레이스의 각 코스별 안내표가 설치된 모습. 2026.9.20 ⓒ 뉴스1 이상휼 기자

daidaloz@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