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부도 상태"…추미애 경기지사, '재정 비상 상황' 선언

지난해 지방채 한도 99.6% 발행…올해 7700억 감액 추경 불가피
"더 끌어다 쓸 재원 없어"…민생·필수사업 3개월치 예산 미편성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5일 경기도 재정 상황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최대호 기자

(수원=뉴스1) 최대호 기자 = 경기도가 올해 약 7700억 원 규모의 감액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등 심각한 재정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지방채 9430억 원을 발행한 데 이어 각종 기금에서 5588억 원을 끌어다 썼지만, 올해 주요 민생·필수사업 예산조차 3개월분을 편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5일 "지금 경기도는 새로운 공약사업을 추진하기는커녕 이미 진행 중인 사업조차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이라며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했다.

추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는 당장 약 7700억 원 규모의 감액 추경을 해야 한다"며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불과 2~3년 뒤에는 기존 채무를 갚기 위해 또다시 지방채를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밝혔다.

추 지사는 민선8기 당시 예산 부족을 이유로 상당수 민생·필수사업의 올해 예산이 12개월이 아닌 9개월분만 편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는 취임 직후에야 이 중대한 사실과 구체적인 재정 실상을 보고받았다"며 "1420만 도민의 삶과 직결된 중대한 재정 상황이 공직사회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고, 그 심각성마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법을 찾을 수 있겠느냐"며 "이 위기는 결코 일시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해 지방채 발행과 기금 활용으로 재정 위기를 임시방편으로 넘긴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도는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약 9430억 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당시 지방채 발행 한도 9460억 원의 99.6%에 달하는 규모다. 도가 지방채를 발행한 것은 20년 만이었다.

여기에 지난해 5월에는 용도가 정해진 기금도 통합계정을 통해 활용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이후 세 차례 추경을 거쳐 각종 기금에서 약 5588억 원을 통합계정 등을 통해 일반회계 등으로 끌어다 썼다.

남북교류와 평화협력 사업을 위해 조성한 남북협력기금도 상당 부분 소진됐다. 전체 384억 원 가운데 340억 원을 통합계정에 예탁·이전해 현재 44억 원만 남은 것으로 파악됐다.

추 지사는 "지방채를 발행하고 각종 기금까지 끌어다 쓰며 눈속임으로 당장의 위기를 넘겼지만, 그렇게 하고도 올해 예산조차 온전히 편성하지 못했다"며 "미완의, 미생 예산"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노인장기요양 예산 약 1234억 원을 비롯해 △소아응급 책임의료기관 육성 10억원 △친환경 우수 농축산물 학교급식 지원 34억 원 △경기도 산후조리비 지원 80억 원 △도교육청 유·초·중·고 급식비 지원 584억 원 △가족돌봄수당 지원 14억 원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지원 29억 원 △시내버스 공공관리제 운영 지원 291억 원 등 주요 민생·필수사업은 10~12월 3개월분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

추 지사는 "이제는 마른 땅에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것처럼 더 이상 끌어다 쓸 재원도, 위기를 미룰 여력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구조적인 세입 한계도 재정 위기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도 전체 예산은 약 41조7000억 원이지만, 도가 정책적 판단에 따라 자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약 3조5000억 원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복지사업과 국비 매칭사업, 시·군 조정교부금 등 사용처와 부담 규모가 정해져 있다.

추 지사는 경기도와 서울의 세입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개인과 법인의 지방소득세 등 비교적 안정적인 세원을 확보하고 있지만, 경기도 본청에는 지방소득세가 없다. 또 경기도는 보통교부세를 받지 못하는 불교부단체인 데다 전체 도세의 절반 이상을 부동산 거래에 따라 변동성이 큰 취득세에 의존하고 있다.

실제 경기도의 취득세 수입은 2022년 약 11조 원에서 올해 약 8조 원 수준으로 약 30% 감소했다.

3기 신도시 개발에 따른 취득세 수입 전망도 밝지 않다. 공공임대주택 비율과 LH 직접개발 방식 등을 감안하면 당초 6500억 원으로 예상했던 취득세 수입이 2300억 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추 지사는 "신도시가 들어서면 경기도는 교통과 소방, 복지와 기반 시설 확충에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정작 개발에 따른 세입 확충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기업 유치 역시 경기도의 재정 확충으로 직접 연결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경기도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유치를 위해 전력과 용수, 교통망 확충 등에 행정적·재정적으로 막대한 지원과 투자를 해도 기업활동으로 발생하는 법인 지방소득세는 시·군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추 지사는 "정작 인프라 투자를 주도한 경기도는 단 1원도 받을 수 없다"며 "개발과 기업 유치에 필요한 비용은 부담하면서도 그에 따른 세수는 확보하지 못하는 불균형한 구조"라고 말했다.

세입은 줄어드는 반면 경기도가 부담해야 할 재정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복지 예산은 전체 예산의 약 49%에 달한다. 이 같은 증가세가 이어지면 머지않아 전체 예산의 60%에 이를 수 있다는 게 경기도의 설명이다.

2022년 이후 경기도 전체 인구는 약 30만명 증가했지만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약 60만명 늘었다. 최근 5년간 고령인구 증가율도 연평균 6.8%로 전국 평균 5.4%보다 높다.

추 지사는 "대규모 인구 유입과 고령화로 인한 복지 수요가 앞으로 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재정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경기도 재정의 정상화가 절박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앙정부와 경기도의회, 31개 시·군의 협력을 통한 재정 위기 극복을 강조했다.

추 지사는 최근 기획예산처 장관을 직접 만나 지방소비세 확충과 세제·재정 제도 개선을 건의했으며, 경기도의회를 찾아 재정 실상을 설명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앙정부의 제도개선만 기다릴 수도, 경기도만의 힘으로 이 위기를 해결할 수도 없다"며 "경기도의회와 31개 시·군, 1420만 도민과 모든 공직자가 원팀이 돼 함께 현실을 직시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추 지사는 이날을 기점으로 고강도 재정개혁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 2026년 8월 5일 이 시간부로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한다"며 "더 늦기 전에 재정을 바로 세우고 도민의 삶과 경기도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라고 말했다.

우선 도지사와 고위공직자의 각종 업무 경비를 감액하고 강도 높은 세출 구조조정을 시행한다. 일회성·선심성 행사와 불요불급한 사업은 즉시 중단하거나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관행적으로 반복되는 연구용역과 민간위탁, 대행사업도 타당성과 효과를 재평가해 추진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조직도 전면적으로 손질한다. 도지사 직속 참모조직부터 엄격하게 재정비하고 실·국과 공공기관 간 칸막이를 없애 인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한다. 사업의 필요성과 성과, 중복 여부도 원점에서 점검한다.

다만 재정 위기를 이유로 민생을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강조했다. 추 지사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 취약계층 보호 등 반드시 확보해야 할 예산은 끝까지 지키겠다"며 "불필요한 곳에서 먼저 줄이고, 더 큰 책임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이 감당하는 공정한 재정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세입 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한 제도개혁도 추진한다. 추 지사는 지방소비세 확충과 기업 유치에 따른 세수의 합리적 배분, 국고보조사업의 과도한 지방비 부담 개선 등을 국회와 정부에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경기도정은 지방자치의 존립과 경기도의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며 "재정위기가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닌 만큼 이를 바로잡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과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그 고통을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삶에 떠넘기지 않겠다"며 "불필요한 곳에서 먼저 줄이고, 더 큰 책임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이 감당하는 공정한 재정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추 지사는 "지금의 어려움을 미래 세대의 빚으로 넘기지 않고 더 나은 경기도를 위한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sun070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