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혔던 '대북송금 제3자뇌물' 법정 다시 열린다…핵심은 대가성·청탁

항소심, 이중기소 판단 뒤집어…부정한 청탁·대가성 본격 심리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2026.4.28 ⓒ 뉴스1 신웅수 기자

(수원=뉴스1) 배수아 기자 = '쌍방울 대북송금 제3자뇌물' 사건에서 뇌물공여 혐의로 1심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다시 본안 판단을 받게 됐다. 항소심이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뇌물공여 혐의를 동일한 사건으로 본 1심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내면서다.

다만 항소심이 김 전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 '이중기소'를 이유로 재판을 끝낸 1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보고, 1심에서 뇌물공여죄 성립 여부를 다시 심리하라고 판단한 것이다.

10일 수원고법 제2형사부(고법판사 김건우 임재남 서정희)는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회장에 대한 1심 공소기각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 합의부로 환송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국환거래법 위반죄와 뇌물공여죄는 보호법익과 구성요건, 행위의 성격이 서로 다르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외국환거래법 위반죄가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외국환관리 질서와 국가 경제에 관한 것인 반면, 뇌물공여죄의 보호법익은 직무집행의 공정성과 국가 기능의 공정성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환거래법 위반죄는 한국은행 총재의 허가나 신고 없이 외화를 지급한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고, 뇌물공여죄는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공무원이나 제3자에게 금품을 제공한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라며 두 혐의를 하나의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수원지법 형사11부는 지난 2월 김 전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실체적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1심은 쌍방울이 북한에 800만 달러를 보낸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와 이 돈이 당시 경기도의 사업비와 이재명 대통령(당시 경기지사)의 방북 비용을 대신 낸 제3자뇌물이라는 혐의를 하나의 행위에서 발생한 범죄로 봤다.

이미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만큼 뇌물공여 혐의로 다시 기소하는 것은 이중기소에 해당한다는 판단이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법리 오해가 있다며 항소했고, 항소심은 두 혐의가 별개의 행위와 법익을 대상으로 한 독립된 범죄라고 판단했다.

유죄 판단 아닌 '재판 재개'…김성태에는 불리한 상황

이번 판단으로 김 전 회장은 끝난 것으로 여겼던 제3자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공소기각은 혐의의 실체를 판단하지 않고 재판 절차를 끝내는 형식 판결이다. 반면 파기환송에 따라 다시 열리는 1심에서는 검찰과 김 전 회장 측이 증거와 법리를 놓고 제3자뇌물죄 성립 여부를 다투게 된다.

김 전 회장 입장에서는 본안 판단 없이 사건이 종료됐던 상황에서 다시 유무죄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커진 셈이다.

다만 항소심 판단 자체가 김 전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가 성립한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다.

항소심은 외국환거래법 위반죄와 뇌물공여죄가 별개의 범죄이므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뿐, 부정한 청탁이나 대가성, 공모관계가 인정되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환송된 1심 재판부가 증거조사를 거쳐 새로 판단해야 한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현 대통령)와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2018.7.10 ⓒ 뉴스1
'누구를 위한 송금이었나'…대가성·부정한 청탁이 쟁점

검찰은 쌍방울이 북한에 보낸 800만 달러가 당시 경기도가 추진하던 스마트팜 사업비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 비용을 대신 지급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쌍방울이 경기도의 대북사업 지원과 각종 편의를 기대하고 북한에 돈을 지급했으며, 이 과정에 김 전 회장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이 관여했다는 것이 검찰의 공소 내용이다.

그러나 대북송금이 이뤄졌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제3자뇌물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제3자뇌물죄가 성립하려면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고, 그 청탁의 대가로 제3자에게 금품이 제공됐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이에 따라 환송심에서는 쌍방울이 북한에 돈을 보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경기도에 어떤 지원이나 편의를 요구했는지, 실제로 대가관계가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법정에서는 "누구를 위한 대납이었는가" "쌍방울과 경기도 사이에 어떤 약속이 있었는가" "북한에 지급된 돈과 경기도의 사업 지원 사이에 대가관계가 있었는가" 등이 다시 다뤄질 수밖에 없다.

이화영 전 부지사의 진술 역시 증거 가운데 하나로 검토될 수 있지만, 그의 진술만으로 사건의 결론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와 김 전 회장의 진술뿐 아니라 관련 문서, 통화 내역, 경기도의 대북사업 추진 과정과 쌍방울에 대한 지원 여부 등 객관적 증거를 종합해 판단하게 된다.

타 사건에도 영향 가능성…형사책임 예단은 금물

이번 파기환송으로 대북송금이 제3자뇌물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는 법정 심리는 다시 열리게 됐다.

1심의 공소기각 판결은 이재명 대통령 측에서 대북송금과 제3자뇌물 혐의가 별개의 범죄가 아니라는 방어 논리로 활용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항소심이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뇌물공여를 서로 다른 범죄로 판단하면서, '대북송금 제3자뇌물'에 대한 법적 판단이 이미 끝났다는 주장은 힘을 잃게 됐다.

김 전 회장의 환송심에서 제3자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본안 판단이 내려질 경우, 공범으로 기소된 이 대통령 사건에도 법리적·증거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당시 경기도의 대북사업과 방북 추진의 최종 책임자로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를 지목하고 있다. 향후 환송심에서 부정한 청탁과 대가성, 당시 경기도 관계자들의 공모 여부가 어떻게 판단되는지가 이 대통령 사건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이번 항소심 판결만으로 이 대통령의 형사책임이 인정됐다고 볼 수는 없다.

항소심은 김 전 회장의 뇌물공여죄에 대한 유무죄는 물론, 이 대통령의 인식이나 공모 여부도 판단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책임 여부는 별도의 재판에서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대북송금이 곧바로 뇌물로 인정됐다'는 데 있지 않다. 이중기소라는 이유로 닫혔던 제3자뇌물 재판의 문이 다시 열렸고, 김 전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가 처음으로 실체적 판단을 받게 됐다는 데 있다.

sualuv@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