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집 딸'에서 첫 여성 광역단체장까지…추미애가 걸어온 가시밭길

판사·6선 의원·당대표·장관 거쳐 첫 여성 광역단체장 타이틀까지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과거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고 이희호 여사와 함께하고 있다.(추 후보 캠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수원=뉴스1) 최대호 기자 = 민선 지방자치 도입 이후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이 탄생했다. 3일 실시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최대 지방정부의 수장이 된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의 이야기다.

'대구 세탁소집 둘째 딸'로 출발해 판사, 6선 국회의원, 집권여당 대표, 법무부 장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거쳐 경기도지사에 이르기까지. 그의 30년 정치 인생은 주류 정치와 관행에 맞서며 굵직한 고비를 넘어온 과정으로 평가된다.

위기의 순간마다 정면 돌파를 선택하며 '추다르크'라는 별칭을 얻은 추 당선인의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1958년 대구의 세탁소 가정에서 태어난 추 당선인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가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판사 시절부터 강단 있는 행보로 주목받았다. 군사정권 시절 권력의 압박에도 부당하다고 판단한 영장 발부를 거부하는 등 소신 있는 판결로 이름을 알렸다. 이 시기 형성된 "법은 약자를 위한 울타리여야 한다"는 신념은 이후 정치 활동의 바탕이 됐다.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과거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하고 있다.(추 후보 캠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정계 입문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여성 후보의 지역구 당선이 드물었던 상황에서 현장 중심 선거운동으로 승리를 거뒀다.

초선 의원 시절에는 제주4·3사건 진상 규명에 적극 나섰다. 수형인 명부를 발굴하고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며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에 힘을 보탰다. 이는 훗날 법무부 장관 재임 시절 관련 후속 조치로도 이어졌다.

대구 출신이면서도 호남 기반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정치 활동을 이어온 점도 그의 정치 인생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꼽힌다. 지역주의 극복을 강조하며 선거 때마다 대구를 찾아 지지를 호소했고, 이 과정에서 불리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추 당선인은 민주당 대표 시절 당의 외연 확대와 조직 안정에 주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당대표에 선출된 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국면에서 촛불 민심을 정치권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계파 갈등을 조정하며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었고, 2017년 대선 승리와 이후 지방선거·재·보궐선거 승리를 견인했다. 민주당 역사상 최초로 임기를 모두 채운 당대표라는 기록도 남겼다.

당대표를 지낸 중진 정치인이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직을 맡으며 검찰개혁의 최전선에 섰다.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과의 갈등은 정치권의 최대 현안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이후 제22대 국회에 복귀한 그는 6선 중진 의원으로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아 검찰개혁 관련 입법 논의를 주도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의 법무부장관 시절 모습.(추 후보 캠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추 당선인은 당선 직후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자 미래"라며 "이재명 정부와 함께 경기도에서 대한민국 정상화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1420만 도민은 그의 정치적 경험과 행정 역량에 주목했다. 판사로서 사법을 경험했고, 국회의원과 법사위원장으로 입법을, 여당 대표와 장관으로 행정을 두루 거친 이력은 최대 지방정부를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주요 정치적 고비마다 존재감을 보여온 추 당선인. 헌정사상 첫 여성 광역단체장이라는 새 이정표를 세운 그가 이재명 정부와의 협력 속에서 경기도정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추미애 당선인은 4일 오전 4시 30분 현재 개표율 86.54% 기준 325만9699표(55.13%)를 얻어 양향자 국민의힘 후보(232만3279표·39.29%)를 큰 격차로 앞서며 사실상 당선을 확정 지었다.

sun070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