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76년 만에 귀환…'이름'으로 돌아온 소방관 아버지

수원시 베테랑팀장 동행 속'자료 없음' 벽 넘어 기록 복원
소방관 공식 확인, '명예 회복'도…유가족 오랜 한 풀었다

최윤한 씨(왼쪽 두 번째)가 지난달 19일 수원소방서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5주년 의용소방대의 날 기념식'에서 아버지 고(故) 최호철 씨 명예의용소방대원 위촉장과 감사패를 받고 새빛민원실 베테랑팀장, 조창래 수원소방서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4.8/뉴스1

(수원=뉴스1) 김기현 기자 = 76년이라는 모진 세월의 격랑 속에서도 납북된 아버지의 흔적을 포기하지 않고 좇아온 한 노인의 간절한 염원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수원시 공무원들의 끈질긴 추적과 따뜻한 동행이 더해지며, 오랜 시간 깊은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기억과 기록들이 하나둘 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8일 시에 따르면 팔달구 연무동에 거주하는 최윤한 씨(82)는 아버지인 고(故) 최호철 씨(1917년생) 생전 행적을 확인하기 위해 오랜 시간 여러 기관에 도움을 청해 왔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늘 '자료 없음'이었다. 아버지 삶의 작은 흔적이라도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달리, 형식적인 대응에 상처를 받는 일도 적지 않았다.

최 씨가 알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납북됐으며, 납북 전 의용소방대로 활동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는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난해 6월 시 '새빛민원실'을 찾아 간절함을 담아 손을 내밀었다.

새빛민원실은 경력 20년 이상 베테랑 팀장들을 중심으로 시민 홀로 해결하기 까다로운 민원을 한 번에 처리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영덕·김남현·구원서 팀장. 세 명의 베테랑은 최 씨 '민원 후견인'을 자처하고 경찰청, 소방청, 국가기록원, 통일부 등 관계 기관에 사실 조회를 진행하며 자료 확보에 나섰다.

그 결과, 통일부로부터 고 최호철 씨가 납북자로 공식 결정된 기록과 함께 납북 당시 직업이 '소방관'으로 기재된 자료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최윤한 씨가 이재준 경기 수원시장에게 보낸 감사 편지. (수원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4.8/뉴스1

베테랑 팀장들은 또 같은 해 9월 유족과 함께 파주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을 찾아 전시관 벽면과 야외 추모비에서 고인 이름이 등재된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헤어진 지 76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기록을 마주한 최 씨는 추모비에 새겨진 이름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아가 베테랑 팀장들은 경기도의용소방대 연합회장과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를 만나 고인 공적을 기리고, 유가족을 예우할 방안을 논의했다.

수원소방서는 고 최호철 씨를 명예 의용소방대원으로 위촉하고, 지난 3월 19일 열린 의용소방대의 날 행사에 유족을 초청해 위촉장을 수여했다.

수원소방서 의용소방대연합회는 감사패를 전달했으며, 경기도의용소방대연합회도 명예의용소방대원 위촉패를 수여했다.

최 씨는 이재준 시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버지가 납북된 후 가족들은 수십 년 동안 가슴 아파하며 그리워했다"며 "기념관까지 가는 길이 혼자 감당하기 버거웠지만 베테랑 팀장님들이 함께해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이어 "단순한 행정 지원을 넘어 국가와 사회가 한 사람의 아픔과 간절함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큰 위로이자 희망이 됐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베테랑 팀장들은 "납북자들은 때로 월북이라는 오해를 받아 유가족이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며 "민원 후견인 제도를 기반으로 명예 회복에 힘썼고, 고인의 삶이 다시 조명돼 기쁘다"고 말했다.

kk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