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단종 있을 동쪽으로 누운 소나무 숲…정순왕후 잠든 남양주 '사릉'
평생 남편 단종 그리워하며 여든까지 장수
영화 '왕사남' 흥행 여파로 관람객 2배 이상 증가
- 이상휼 기자
(남양주=뉴스1) 이상휼 기자 = 17세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돼 한양을 떠나 영월 유배길에 오를 때 그는 아내 정순왕후와 청계천의 다리 위에서 이별했다. 이 다리는 원래 다른 이름을 가졌으나, 단종 부부의 안타까운 헤어짐 이후 영영 이별한다는 뜻의 영도교(永渡橋)로 불리고 있다.
이날 이후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정순왕후 송 씨(1440~1521)는 남편이 유배될 때 노산군부인으로 강등됐다가 단종이 죽은 뒤 관비로 격하됐다. 정순왕후의 아버지 송현수는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사형을 당했다. 세조는 정순왕후를 노비로 전락시켰지만 노역을 시키지 말라고 명했다.
단종 사후 정순왕후는 출가해 비구니가 됐다는 민담도 있다. 단종이 유배 가 죽은 뒤 매일 앞산에 올라가 동쪽을 바라보면서 통곡했다는 전설도 있다.
정순왕후는 남편과 아버지 사후 동대문 바깥에 초가집을 살았다고 일컬어지며, 염색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왕궁에서 도움을 주려 했지만 사양했다.
평생 재혼하지 않았고 팔순까지 장수했으며 중종 16년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정순왕후의 무덤은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에 위치한 '사릉(思陵)'이다. 평생 단종을 그리워했다는 의미를 품은 능호다. 숙종 때인 1698년 정순왕후로 복위됐고 능의 이름도 사릉으로 바뀌었다.
사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사릉의 소나무들은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남편이 있는 영월쪽을 바라보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로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1999년 사릉에 있던 소나무 한그루를 남편이 묻힌 영월 장릉으로 옮겨 심고 '정령송'이라고 부르고 있다. 두 사람의 영혼을 이어주자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사릉은 경춘선 사릉역과 금곡역 중간지점에 위치했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6일 오후 날씨 탓인지, 기자가 사릉을 찾아갔을 때 방문객은 기자 외엔 아무도 없었다. 다만 매표소에 직원 2명과 사능 내부를 지키는 장정 2명이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릉의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했고,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석마·장명등·석상(혼유석)·망주석이 세워졌다. 석양(양 모양 석상)과 석호(호랑이 모양 석상)가 1쌍씩 배치됐다.
사릉 산책의 묘미는 노송 숲길이다. 사릉 일대에는 멋지게 휘어진 노송이 숲을 이뤄 산책자의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산책을 하기에는 인근의 홍유릉에 비해 규모가 작고 단촐했다. 하지만 정갈한 맛이 있다.
관객 천만 돌파를 앞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여파로 사릉에도 관람객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 곳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에 따르면 전년 대비 관람객이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지난해 사릉 관람객은 1월 737명, 2월 603명, 3월 1016명, 4월 1582명, 5월 2112명으로 날씨가 차차 풀리면서 관람객들도 많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올해 관람객 통계 자료는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매표소 관리 직원에 따르면 체감적으로 두 배 이상이 방문했다고 한다.
남양주시에서 운영하는 문화재 해설사의 해설 요청자 역시 2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2월 152명이 해설을 요청한 데 비해, 올해 같은 달 433명이 사릉을 방문해 문화재 해설을 경청했다.
영화 흥행의 긍정적 효과가 우리 역사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남양주에는 3개의 조선왕릉이 있다. 사릉과 함께 금곡동에 홍·유릉(고종과 왕비, 순종과 왕비), 그리고 국립수목원 옆에 '광릉'이 있다. 광릉은 소년 왕 단종의 삶을 비운으로 몰고 간 조선왕 세조가 묻혀 있다.
사릉의 입장료는 1000원이고 남양주시민은 50% 할인받는다. 매주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daidaloz@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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