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 찾아 춘천까지…가평 노인들, 외로움과 사투[지방소멸은 없다]
고스톱 치고 함께 요리하며 시간 보내는 어르신들
유일한 친구 TV 하나…버려진 집들 흉물처럼 방치
- 양희문 기자
(가평=뉴스1) 양희문 기자 = 수도권이지만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지역이 있다. 상수원보호구역 등 각종 개발제한으로 묶여 있는 경기 가평군이다. 가평은 연평균 0.3%씩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출생자 수보다 사망자 수가 높은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떠난 마을은 활력을 잃었고, 노인들은 서로 의지하며 외로움과 싸우고 있다.
◇“에이 또 쌌네”…사람냄새 찾아 경로당으로
28일 가평군 북면 이곡2리 경로당. 대낮부터 할머니들의 눈치싸움이 시작됐다. 패를 섞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고, 패를 쥔 할머니들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긴장감은 커졌고, 화투 한 장에 신중을 기했다. 마치 영화 ’타짜‘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얼마 안가 이모 할머니(79)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고도리 패를 끝까지 쥐고 있던 그가 이긴 것이다. 이 할머니는 “새가 난다~ 새가 난다~”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최고참 신모 할머니(89)는 “얼씨구, 놀고 있네. 살살 좀 해”라며 장난스럽게 이 할머니의 팔을 툭툭 쳤다.
즐길 거리가 없는 이 마을에서 화투는 낙이다.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경로당에 모여 고스톱을 치며 하루를 보낸다. 끼니때가 되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이렇게 이들은 외로움을 달래고 서로 의지한다. 독거노인이 많은 마을 특성상 경로당은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 할머니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끼리 경로당에 와서 놀다 간다. 혼자 쓸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함께 세월을 보내는 게 덜 고독하지 않겠느냐”며 “오후 4시쯤 되면 다들 헤어지는데 집에 가면 무척 외롭다”고 말했다.
◇“아프니 집에만 있지”…병원 가는 데만 한나절
일부 노인에게 경로당에 간다는 건 꿈같은 얘기다. 이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모 할아버지(90)는 6평 남짓한 방에서 하루를 버틴다. 방광에 생긴 종양 탓에 건강이 나빠지면서 외부활동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아내를 떠나보내고 줄곧 혼자였던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친구는 TV 하나다.
이 할아버지가 입을 여는 날은 일주일에 세 번뿐이다. 국가보훈처 직원이 찾아오는 날이다. 6·25 참전용사인 이 할아버지는 보훈처의 지원을 받고 있다. 직원은 일주일에 3번 그의 집에 방문해 말을 걸어주고, 음식과 빨래를 해준다. 그는 잠시나마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이 시간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고통스러운 시간은 병원 가는 날이다. 종양이 있는 이 할아버지는 보름에 한 번씩은 내원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가평에는 종합병원이 없어 강원 춘천시로 가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왕복 3시간이 소요된다. 진료시간 등 부가적인 시간까지 따지면 한나절도 부족하다. 건강이 나쁜 그가 대중교통을 타고 춘천까지 가는 건 쉽지 않다.
이 할아버지는 “버스랑 전철 타고 갈 때는 힘들지만, 읍내에 사는 며느리랑 아들놈이 병원까지 데려다 줄 때도 많다. 괜찮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젊은이 떠난 마을엔 폐가만 덩그러니
시끌벅적한 경로당을 뒤로 한 채 길가로 나왔다. 젊은이들이 떠난 마을은 한적했다. 지나가는 사람 한 명 보기 힘들 정도로 골목은 텅 비었다. 얼마나 조용한 지 걸을 때마다 발자국 소리와 진동이 그대로 귓가에 울렸다. 개짓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로 착각할 뻔했다.
버려진 집은 흉물처럼 방치돼 있었다. 마당은 낙엽과 쓰레기로 넘쳤고, 마루는 곳곳이 갈라지고 썩은 상태였다. 건물 벽을 옭아맨 덩굴에 의해 벽은 부서지고 무너져 있었다. 테마파크 귀신의집보다 더 을씨년스럽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이 마을은 161가구에 326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70대 이상 어르신이라고 한다. 60대는 청년으로 취급돼 마을 이곳저곳을 살피며 일손을 돕고 있다. 유치원생은 단 2명뿐이어서 아기 울음소리 듣기가 어려운 동네다.
이영운(83) 이곡2리 이장은 “60대 이하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 70~80대 노인들이어서 기력이 없는 분이 많은데 몇 년 지나면 빈집이 수두룩해질 것 같다”며 “같이 늙어가는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마을을 꾸려가고 의지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율 28.7%…출생자보다 사망자 더 많아
가평군은 인구소멸 위기에 처했다. 군에 따르면 군의 인구는 지난해 기준 6만2150명(남성 3만2102명, 여성 3만48명)으로 그중 65세 고령인구가 28.7%를 차지했다. 2000년 12.7%, 2010년 19.1%에 비해 비약적으로 수치가 높아진 것이다. 20% 이상부터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뜻한다.
출생자 수보다 사망자 수가 높은 데드크로스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2013~2022년 가평지역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3906명인데 같은 기간 사망자는 6180명이다. 노령화지수도 352.73%로 경기도 평균(116.1%)보다 3배 이상 높다.
가평은 서울 근교에 위치해 있지만 수도권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상수원보호구역인 가평은 각종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는 데다 최근에는 '기회발전특구'에서도 제외됐다. 기회발전특구에 지정되면 특구에 투자하는 개인 또는 법인에 세제 감면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군 관계자는 “가평군은 경기도에서 인구소멸지수가 두 번째로 높다. 그만큼 인구 유출과 감소가 심각한 지역으로, 지역 소멸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며 “이는 지역적 문제가 아닌 국가 차원의 문제다.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협력해 소멸 위기를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yhm9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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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영영 사라져 없어지는 것. '소멸'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토록 무섭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 옆의 이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숙제를 힘 모아 풀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 현실과 고민을 함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