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조 호남 반도체 투자에…"수천억 사업은 명함도 못 내밀겠네"

제조업 불모지 전남광주에 거대 스케일 경제 호재
지역경제 단비로 평가받던 투자사업들 상대적 소외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광주 군공항. 2026.7.6 ⓒ 뉴스1 김태성 기자

(광주=뉴스1) 박영래 기자

"800조 원 반도체 이야기가 나오니 그렇습니다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1조 원 투자는 지역에 생명수 같았습니다."

광주의 한 공공기관 대표를 지낸 A 씨가 최근 자신의 SNS에 남긴 글이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단일 지역 투자로 불리는 800조 원 규모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이 구체화하면서, 재임 기간 자신이 사활을 걸었던 1조 원대 AI데이터센터 사업이 상대적으로 빛을 발하지 못하자 나온 씁쓸함과 아쉬움의 발로다.

전남광주 지자체와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제 1조 원대 사업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21일 산업계에 따르면 전남광주는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연매출 1000억 원을 넘기는 기업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제조업 기반이 취약했다. 때문에 지자체가 수백억 원 규모의 기업 투자나 국비 사업을 유치하기만 해도 지역언론 1면에 대서특필되곤 했다.

그같은 흐름이 이어지면서 최근 '1조 2000억 원대 인공태양 사업'이나 '1조 5000억 원대 광주 AI 모빌리티 국가시범도시' 조성사업 등은 전남광주의 차세대 먹거리이자 지역경제의 단비로 평가받아 왔다.

1조 2000억 원 규모의 나주 인공태양(핵융합) 연구시설 구축 사업은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켄텍) 인근인 나주시 왕곡면 일원에 들어서는 차세대 무한 청정에너지 연구기지다. 10조 원 이상의 경제 파급효과와 첨단 고용 창출이 기대되는 전남 첫 초거대 국책 연구시설이다.

해남 솔라시도에 들어서는 AI 데이터센터 조성사업은 2조 원 이상이 투입돼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210㎿급 초대형 AI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1조 5000억 원 규모의 광주 AI 모빌리티 국가시범도시 조성사업이나, 광주 첨단3지구 AI 집적단지 조성사업도 사업비가 수천억 원에서 1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사업들이다.

전남 22개 시·군에 체류형 관광 인프라를 10년간 대대적으로 확충하는 광역 관광 프로젝트인 '전남 남부권 광역관광개발 사업'도 총 3조 원대에 이르는 메가 프로젝트로 불렸다.

하지만 단위부터 차원이 다른 '800조 원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가 판을 뒤흔들면서 지역사회가 느끼는 금액 단위의 체감지수 역시 급격하게 커졌다.

수천억 원, 1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조차 800조 원이라는 거대 숫자에 묻혀 소규모 사업처럼 느껴지는 착시효과까지 나타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수년 동안 대형 사업 유치에 안간힘을 썼던 지자체 공무원들 사이에 묘한 허탈함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지자체 한 관계자는 "중앙정부를 쫓아다니며 수백억 사업예산을 따오면 엄청난 주목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수천억원 정도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 같다"면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800조 원이라는 초대형 호재가 지역의 미래 비전을 키운 것은 분명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그동안 지역을 뒷받침해 온 수백억 내지 수천억, 1조 원대 첨단산업 인프라나 중소·중견기업 유치 성과도 결코 과소평가 받아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yr200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