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배재고 학생들…'5·18 조롱 응원'이 남긴 것
진정성 있는 사과와 광주제일고의 포용…교육적 전환 평가
온라인 혐오 밈 일상화 우려도…"예방 교육·대응 체계 필요"
-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5·18민주화운동과 광주를 조롱하는 응원으로 논란을 빚은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를 찾아 사과하고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번 사건은 학생들의 사과와 광주제일고의 포용으로 교육적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동시에 온라인 혐오 밈이 학교 현장까지 스며든 현실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6일 배재고 학생들은 광주제일고를 찾아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후 광주제일고 학생들과 함께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앞서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은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5·18민주화운동과 광주를 조롱하는 취지의 응원을 해서 논란을 빚었다. 해당 응원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했고, 5·18 단체와 교육계 안팎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5·18 단체와 교육기관 관계자들은 학생들이 피해 학교를 직접 찾아 사과하고,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과정을 의미 있게 평가했다.
5·18 관계자는 "사과는 말 한마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존중받을 수 있다"며 "학생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 학교를 직접 찾아가 함께 역사를 배우는 과정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에게는 용서할 권리도 있고 용서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며 "진심 어린 사과가 먼저 있어야 비로소 용서와 화해도 가능하다는 점을 이번 과정이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과 과정은 5·18이 지난 46년 동안 우리 사회에 던져온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여전히 충분한 사과와 책임 인정,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의 사과와 참배는 '진정성 있는 사과가 먼저 있어야 화해도 가능하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시킨 장면이었다는 평가다.
다만 이번 사건은 왜 학생들이 5·18과 광주를 조롱하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따라 불렀는지에 대한 질문도 남겼다.
교육 현장에서는 혐오 표현과 조롱 밈이 이미 학생 문화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광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 A 씨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온라인 조롱 밈이 너무 보편화돼 있다"며 "일부 학생들은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말투나 표현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따라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 스스로도 무엇이 왜 문제인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상적으로 소비되다 보니 혐오라는 인식 자체가 희미해진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앞서 광주에서는 5·18 희생자를 조롱하는 표현이 담긴 이른바 '스타벅스 사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교육계에서는 이 같은 사례가 개별 학생이나 학교의 일탈을 넘어 온라인 혐오 문화가 현실 공간으로 옮겨오는 흐름을 보여준다고 보고 있다.
지역 차별 역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윤경은 씨(20·여)는 "광주에서 왔다고 말했더니 '전라도야? 민주당 지지하겠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들은 적이 있다"며 "특히 선거철이면 출신지를 말하는 것 자체가 조롱의 시작이 될까 걱정될 때가 있다"고 말했다.
5·18기념재단은 이번 사안을 개별 학교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반복되는 5·18 왜곡과 지역 혐오, 조롱 문화가 청소년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예방 교육과 대응 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스타벅스 사태나 배재고 사태 모두 혐오가 일상까지 퍼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제는 재단이나 민간단체 몇 사람이 모니터링하고 법률 대응하는 수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국민통합위원회 등 관계 부처가 함께 범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예방 교육과 제도 개선, 대응 체계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학교 스포츠의 역할도 다시 묻고 있다.
학교 스포츠는 기술과 승패만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와 스포츠맨십, 공동체 의식을 함께 배우는 교육의 장이다. 응원 역시 상대를 조롱하거나 특정 지역의 아픔을 희화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수들을 격려하고 경기를 존중하는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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